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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지만 합창은 하고 싶어 (2)

지옥 훈련

by 서글

두 달 간의 짧은 기간이 주어졌습니다. 수, 토, 일, 일주일에 총 세 번, 18시부터 23시까지 하루 총 5시간의 연습 스케쥴이 잡혔어요. 처음 들을 때만 해도 할만하겠다고 생각했죠. 일주일의 반절보다 적게, 저녁 시간만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었어요. 아, 제가 참 안일했습니다. 구성원의 80%가 전공자인 팀의 연습량과 수준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처음 다섯 번까지는 노래 위주의 연습 시간이 주어졌어요. 악보를 보면서 강약 조절, 리듬, 발음, 감정 등 합창곡의 디테일한 부분을 함께 잡아가는 시간이었죠. 지휘자님의 교정을 열심히 악보에 필기하고 그대로 부를 수 있도록 혼자서도 많은 연습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악보를 뗀 다음이었어요. 내가 맡은 파트인 베이스의 음정을 부르려다가도 옆에서 테너, 뒤에서 알토의 음정이 들려오면 음정을 놓치고 헤메곤 했죠.


그 다음 고비는 안무 연습을 하면서 나타났어요. 이번 세계 합창 대회의 '쇼콰이어' 부문에 참가하는 우리 팀은 15분 분량의 안무도 함께 소화해야 됐어요. 노래에만 신경을 집중하기도 바쁜데, 춤을 추고 표정 연기까지 해야 하는 것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안무를 계속 틀리기도 하고, 안무를 하다보면 노래를 놓치기도 했어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결국 연습이 답이라는 것을 이 때 느꼈어요. 이미 숙련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처음엔 다들 헤메는 모습을 볼 수 있었거든요. 차이점은 연습을 많이 해오는 사람에게서 느껴졌어요. 함께가 아닌, 개인 연습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할 수록 안무와 놸는 점차 몸에 익어왔어요. 헷갈리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긴 쇼가 점점 외워졌고, 어느새 감정 이입까지 하며 온전히 극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렇게 밑바닥부터 했던 경험은 오랜만이었기에, 내가 현재 가진 능력이 없고,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샌가 봐줄 만한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이번 합창 대회의 연습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도움이 될 만한 소중한 경험이었답니다.


마지막 고비는 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런'을 돌기 시작하면서 발생하였어요. '런'이라는 것은 15분 가량의 쇼를 이제껏 조금 씩 잘라서 부분부분 연습했다면,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실제 무대를 하는 것처럼 온전히 에너지를 쓰며 실전과 같이 연습하는 것을 말해요. 노래 뿐만 아니라 고난이도의 안무까지 수행해야 하는 무대였기에 런을 한 번 돌면 체력이 방전되기 마련이었어요.


안 그래도 힘든 런이었는데, 30명이 넘는 합창단원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건물의 공실로 쓰이고 있는 공간에서 마지막 다섯 번 정도를 연습하게 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6월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와, 그 공간에는 에어컨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 공실에서 연습을 할 때에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탈진하는 인원들이 발생하였고 다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거나 호흡 곤란이 오기도 했어요.


얼음물, 선풍기 등 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연습을 해나갈 수 있었어요. 한 번 할 때마다 몸은 땀으로 샤워하듯 푹 젖게 되었고, 이제껏 어떤 운동을 할 때보다 더 힘든 그런 훈련 과정을 겪게 되었어요. 이 때 느낀 점은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헬스장에 가서도 지구력이나 체력 향상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 때부터 런닝 머신을 달리며 체력을 기르기 시작했어요.


전공자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노래와 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낄 수 있었어요. 인생이 힘든 어느 순간에도 이 때를 생각한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21번의 힘든 연습 시간을 가진 뒤, 드디어 대망의 세계 합창 대회 본선 참여를 위해 강릉으로 떠나게 되었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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