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세계 합창 대회
힘들었던 연습이 끝나고, 대회 무대만 남았습니다. 2023년 7월 3일 월요일, 모든 단원들은 강릉 경포 해변 앞 한 펜션에 묵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이 경연이었기 때문에 미리 와서 숙박을 하게 된 것이었죠.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참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좌석에 놓여진 잡지에는 세계 합창 대회를 크게 광고하고 있었죠. 괜시리 합창 곡을 들으며 조용히 두 시간을 달려갔습니다. 강릉역에 도착했을 때에도 당황스러웠어요. 이곳 저곳에 세계 합창 대회를 홍보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지나가는 택시에도 광고가 잔뜩 달려있었죠. 이렇게 큰 대회를 나가게 된 것이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오는 사람들, 학생들 등등 다양한 33명이 모인 것이었기에,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해수욕장에 둥그렇게 모여 앉을 수 있었습니다. 단장님의 훈화 말씀을 뒤로, 한 사람 씩 그 동안의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눈시울이 잔뜩 붉어진 사람부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까지. 그 한 명 한 명이 느낀 두 달 간의 연습기간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저 또한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 동안 정도 많이 들고 이미 삶의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빠른 취침을 명령 받았습니다. 남자 숙소에서는 육군 간부 출신의 단원 덕분에 다음 날 샤워 계획부터, 차량 탑승 인원 분배, 아침 구매 등이 수월하게 이루어졌어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자신의 차로 경연이 이루어지는 경기장까지 왔다갔다 하며 많은 수고를 해주신 멋진 분이었습니다. 그 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 할 것 같아 일부러 낮잠도 한 숨 자지 않고 피로도를 쌓아왔던 덕분인지, 금새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2인 1조로 빠르게 샤워를 하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왁스나 스프레이를 써본 적이 없어서 머리 만지는 게 합창 연습보다 더 어려웠죠. 머리는 또 얼마나 길던지, 한 번 고정해놓아도 다시 풀려버리기 마련이었어요. 메이크업도 마찬가지였죠. 썬크림만 가끔 바르고 다니던 저에게 무대 화장을 해야한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어요. 다행히도 다른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쉐딩, 눈 화장, 파운데이션 등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대 위의 밝은 조명에 이목구비가 날라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대 화장이 필수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렇게 단원의 차를 빌려 타고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역시 여기저기 현수막이 걸려있었죠. 무슨 올림픽에 참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대기실을 배정 받아 사진을 찍으며 긴장을 푸는 것도 잠시였어요. 15분의 짧은 리허설 시간이 주어졌어요. 하지만 위치 마킹, 사전 체크 등 연출 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많았기에 실제 무대를 리허설 할 수는 없었죠. 많은 연출 경력이 있으신 단장님께서는 물론 이 마저도 예상을 하셨습니다.
그 후 대기실도 없이, 빈 로비에서 우리는 마지막 합창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무대 환경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어요. 모니터링 스피커가 무대 한 중앙에 크게 여러 개가 박혀 있었고, 반주는 메아리 쳐서 잘 들리지 않았어요. 마이크의 위치도 애매해서 관객석 맨 끝까지 우리의 소리를 전달하기도 어려웠죠. 음악 감독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가창을 수정해주셨어요. 발음을 꼭꼭 씹어 무대 먼 곳까지 전달되도록 부르라는 것이었죠.
앞의 몇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는 채, 어느 새 본선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우리 팀을 소개하는 멘트가 들리고, 우리는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들어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런히 정리해두었어요. 그리고 늘 연습하던 대로 자신의 자리에 위치했죠. 모든 것이 연습했던 대로였어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서 있었고, 노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나오고 몸에 익은 그 동작과 노래를 시작했어요. 연습했던 대로 모든 것이 맞아 이루어질 때의 쾌감을 저도 모르게 느낄 수 있었어요. 움직이는 동선이 많았는데, 옷깃이 스쳐지나가는 그 소름돋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우리의 무대는 1,2,3 부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1부가 끝나고 많은 박수와 환호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부의 마무리는 우리가 바닥에 쓰러져 누운 채로 끝나는데, 그 순간 눈물이 글썽였어요. 이제껏 연습 때에는 받지 못했던 것을, 그 큰 무대에서 받는 그 순간에 저도 모르게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5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안나는 채, 몸에 익은 그 것을 자동적으로 척척 모두가 실행해나갔어요. 3부의 마지막에서도 많은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1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경험, 33명의 인원들이 하나가 되어 작품을 만드는 경험, 그들에게서 환호를 받을 수 있는 경험은 죽기 전까지 잊지 못 할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모두의 여정은 끝이 났어요. 이 합창 대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흘러졌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것은, 각자의 방식대로 어떠한 감동을, 잊지 못 할 한 순간을 새길 수 있었다는 거예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어떠한 에너지를 받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 단체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요? 자랑스럽게도 금메달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우리의 땀이 보상받는 순간이었죠. 단장님은 저희에게 세계 합창 대회 금메달리스트라는 칭호를 붙여주셨어요. 이 짧지만 길었던 여정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제 인생도 한 층 더 아름다워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