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심보
괜히 심술이 나는 것이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만 하면. 남들이 가는 길로만 가면. 어렸을 때부터 괜시리 조금 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부터였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걷는 등굣길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괜히 뒷산을 돌아가거나, 담장을 넘어다녔다. 덕분에 생긴 무릎에 상처는 아직 흉터로 남아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며칠 동안 등교 거부를 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어릴 때부터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반대로 살고 싶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모두가 어딘가에 가고 같은 시간을 보내며 함께 집으로 돌아가 같은 숙제를 하고 같은 평가를 받는 일상은 감옥 같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시계만 바라보곤 했다.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조금이나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순간을. 티를 내진 않았다. 무리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당하는 개체는 배제당한다는 것을 생물 시간에 배웠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평범한 학생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 무난하고 평범한, 캐스팅이었다면 학생1 이라는 이름으로 적힐.
같은 교육과정을 받고 같은 장소에 모여 수능이라는 시험을 같이 보고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이 정해준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엔지니어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는 채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이유 만으로 그 것은 우리의 꿈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라는 낭만적인 나이에 우리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과제를 하고 시험 준비를 하고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벌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아, 이 것은 중학교 때의 그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중학생 때는 고등학교를 위한 선행 학습을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벌써부터 수능을 위한 준비를 한다. 대학교에 입학에서는 벌써부터 취직을 위한 준비를 한다.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를 이 레이스에 선두에 서기 위해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바톤을 손에 꽉 쥔 채로 쉬지 않고 달린다.
도서관을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다. 감옥 같은 그 기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운동 부족인 성인 남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공기를 무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술자리도 좋아하지 않았다. 유일한 스트레스 배출 장소인 것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언가 하나 끝나면 고생했다며 술을 부어대며 마셔대고 인사불성이 되어 고함을 지르는 그 모습이, 서로에 대한 관심보다 한 순간 재밌으면 될 추태가 인정받는 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왜 항상 반대가 끌리는 것이었나. 그냥 부적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것은 드디어 학생 신분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직장인이 되어서도 나를 사로잡았다. 인정 받는 대기업에 취직하여 높은 연봉을 받고 좋은 복지를 누리는 남부럽지 않은 삶. 어떻게 보면 누가 만든 그 레이스에서 조금은 선두에 있을 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는 삶. 아, 헌데 왜 그 감옥에 계속 갇혀있는 기분이었던가.
결국 탈출하는 방법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 것은 선로에서의 이탈이었다. 누가 정해준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가는 것. 뒤에서 손가락질 하더라도 꿋꿋하게 나의 길을 가는 것. 그 이후에야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한,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닌, 내 삶을 사는 것. 많은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벌써 알아버린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