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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글 Aug 01. 2023

내성적이지만 관심은 받고 싶어

나는 내성적이다. 어쩌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아이일 때부터 그렇게 낯을 가렸다고 한다. 집에서는 곧잘 말을 하거나 까불거리기도 하였지만, 밖에만 나가면 어찌나 합죽이가 되던지,라는 부모님의 증언. 초등학생 때의 별명은 무려 김소심. 남들 앞에서는 얼굴 근육이 굳고 입이 얼어버리곤 했다.


사람들과는 무난하게 좋은 관계를 맺었다. 낯가림이 사라지면 본래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두세 명의 이목만 집중되어도 얼굴이 새 빨개지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도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편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이미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널브러지곤 했다. 그렇다고 지인들과의 약속을 거절하지도 못해 연말, 연초, 생일 주간엔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이었다. 생일 때 연락 오는 지인들의 연락은 참 반갑지만 약속이 가득 찬 달력을 들여다볼 때면, 달력 어플에 박혀 있는 그 점들이 마음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무언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즐겁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직 어색할 뿐이다. 속마음 깊은 얘기와, 숨기고 있는 나의 본래 모습이 샅샅이 드러나게 된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가끔 꿈에서도 괜한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본래의 성향만을 보면 방구석에 틀어 박혀 햇빛도 쬐지 않은 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게 원래 내 운명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참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에 선 것만 해도 대부분의 내용을 채울 것이다. 수 없이 많은 눈동자의 주목을 받고, 그들 앞에서 내 목소리를 온전히 내고, 때로는 몸짓까지 낱낱이 파헤쳐졌다.


그런 관심은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료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도피처가 되는 휴가와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성적이지 않는다.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다. 내 성향과 상반되는 나를 연기하며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기분을 만끽한다. 그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귀와 눈, 모든 에너지가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누군가의 기억, 그 한순간에 자리 잡는다.


이쯤 되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반대로 내성적인 그 모습이 또 다른 연기를 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나서는 일이 더 많아져, 어느 자아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가 참 헷갈릴 뿐이다. 어쩌면 모두가 나와 같을 지도 모른다. 최근 있었던 큰 무대에 함께 올랐던 동료들의 후기를 기억해 보면 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심을 받고 살도록 되어 있나. 잊혀진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의미일까.


아무튼 이런 나의 모순된 삶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내성적인 나에게 어떤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방향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 그렇다. 내성적이지만 관심을 받고 싶다. 그렇게 비워진 나를 조금씩 채워나가고 싶다. 받지 못했던 사랑을, 혹은 넘치게 받았던 사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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