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뒤늦은 여름휴가를 필리핀의 세부로 떠난다.
동남아로 여행을 가는 것은 약 4년 만의 일이다.
사회로 나온 이후로는 처음인 것이다.
그럼에도 세부로 여행지를 정한 것은 온전히 느긋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였다.
원래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짐을 싸는 것부터 낯선 곳에 머리를 누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까지.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짐을 싸 들고 집을 나온 그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다.
최근에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나 색다른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가 내 굳은살을 벗겨내고 새 살을 돋게 한다.
그 과정을 겪은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같은 일상을 새롭게 살게 되는 것이었다.
같이 떠나는 사람도 매우 중요하다.
뭔가 어설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혼자 떠나는 것이 훨씬 낫다.
무언가 익숙한 것이 나를 따라왔을 때에, 새 살을 한껏 느끼다가도 벗겨진 굳은살을 굳이 주워 붙여내는 것이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세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네시 반에 오는 공항버스를 타야 한다.
이 글을 쓰고 바로 잠들어도 네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 전에만 느낄 수 있는 이 감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수많은 일에 치여 축 처진 어깨를 끌고, 그곳에 가면 무언가 새롭고 재밌는 일이 일어나겠지, 기대를 하며 가까스로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에 말이다.
걱정거리로 가득했던 공간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가게 된다면, 이 무거운 머릿속이 말끔히 비워질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전부 제쳐두고 홀가분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먹어 보지 않았던 음식을 먹고,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한다.
입지 않던 옷을 입고, 보지 않던 것을 본다.
그러기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