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그 잔인한 관계에 대하여

관계에 거리두기

by 서글

지인은 내 주위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이다. 말 몇 마디로 씻겨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말이 아닌 표정으로도, 어떠한 몸짓으로도 그 것을 가능케한다. 지인은 사전적으로는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인이라는 범위에 좀 더 친밀한 관계인 친구, 나아가서는 가족까지 포함한다. 그들 역시 결국엔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만나서 대화를 하는 모든 사람이 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는 그 순간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연결되고 그 것을 인간 관계라고 부른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인데, 왜 지인이 잔인하다고 말하는 지 궁금할 것이다. 보통 지인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사람 내 지인이야, 동창이야, 친구야를 넘어서 연이이야, 가족이야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보통 지인은 우리를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존재로 생각된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을 돌아봤을 때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가장 최근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일을 생각해보면 누구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가족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친한 친구일 수도, 혹은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누군가는 눈, 코, 입 중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잘 알고 있는 지인만이 우리에게 기억에 남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줄 수 있다.



누군가는 쉽게 선을 넘나든다. 이는 보통 사회적으로 알게 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 친구나 가족에게는 이미 경계선을 낮춰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주로 지위를 이용해서, 혹은 조금 친밀해졌다는 착각과도 같은 이유로 사회적으로 지켜져야 할 선을 넘게 된다. 당신의 학벌이 어디인지, 그 것이 좋은지 별로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그 곳의 집 값이 어떠한지 등 주로 사생활에 대한 벽을 허물며 다가온다. 당신은 당황하며 넘겨보지만, 한 번 허물어버린 벽이 이제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다음에도 같은 식으로 반복하며 점점 더 가까운 영역으로 들어오고자 한다.



누군가는 깊은 오지랖을 가지고 있다. 눈에 불을 키고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날이면 배탈이 난 것이냐며, 어제 먹은 것은 무엇이냐며, 그런 식단은 좋지 않다고 궁금하지 않은 것을 일장연설로 늘어놓는다. 혹은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않는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좋은 사람 한 번 만나보라며 관심도 없는 이성의 사진을 늘어놓는다.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기는 하겠지만, 받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 마음도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본능적으로 우리의 방어 기제를 펼치게 한다. 그 때에는 자신의 호의를 몰라준다며 되려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우리의 열정을 꺾는다. 당신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여 이것 저것 정보를 알아보고 있을 때, 그 때만큼은 소방관보다 찬 물을 잘 끼얹는다. 그 쪽은 전망이 별로다, 이미 망해가는 분야이다, 내가 다 해봤는데 별로더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리 저리 물을 부어준다. 특정 개인의 경험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과, 그 때의 환경 변수 등이 무한히 다양하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쉽사리 조언을 해줄 수 없다. 또 망해가고 있는지, 전망이 별로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경제 전문가가 나서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 잘 모르면서 하는 말이 많다.



누군가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내 앞에서만 하는 것이면 참 좋을텐데, 뒤에서도 그렇게 내 얘기를 나보다 더 많이 하고 다닌다. 쟤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무조건 그럴 것이다 등의 태도로 나보다 나의 삶을 더 잘 아는 듯이, 예측하고 평가한다. 내 유학길을 뒤에서 점쳐 주었던 한 선배가 기억에 남으며, 본인의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견해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수 많은 철학자와 정신을 수련하는 종교인들도 자신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자 명상을 하고 긴 세월을 수련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알수 없는 게 나라는 존재이다. 누군가에 대해서 다 아는 듯이 쉽게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대놓고 우리를 깎아내린다. 장난이라며 외모를 비하하기도 하고 쉽게 인신공격을 하기도 한다. 가장 나쁜 유형 중 하나이다. 기분이 언짢은 티를 내면 장난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속 좁은 사람을 만들기도 하며, 되려 역정을 내기도 한다. 사회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유형이기도 하다. 쉽게 타인의 약점을 파고들며 그 것을 유희 거리로, 때로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보는 눈을 가졌으며 자신이 본 것을 여기저기에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가벼운 입도 함께 가지고 있다.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무리를 이룰 때 그 효과는 배로 더해진다.



이렇게 지인은 잔인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과 현재 어떤 관계인가? 울며 겨자먹기로 유지하고 있는 관계도 있을 것이고, 참다 참다 끊어버린 관계도 있을 것이다. 어떤 관계를 생각했을 때 더 마음이 편한가? 당연히 멀어져버린 그 관계일 것이다. 함께 했던 추억들이 아까울 지라도 당신을 계속해서 찌르고 있는 그 가시 같은 행동을 가만히 놔두게 된다면, 당신의 마음에 더욱 깊은 상처만 세겨질 것이다. 이제는 그들과 멀어지고 조금 더 자신을 보호해야 될 필요가 있다. 바깥보다는 내면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멀어지라는 것은 꼭 관계를 끊어내라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라는 것에 가깝다. 먼저 지인에게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불리하거나 힘든 상황이 오면 이기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며, 타인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 타인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기둥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 기둥이 무너졌을 때, 더 크게 다치는 것은 기대고 있던 자신일 것이다.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특정 사람에게 크게 기대하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위에 불안정한 기둥 예시를 들었다. 다치지 않는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코어 근육이 단련되어 있다면 어떠한 상황이 와도 자신의 근육으로 굳건히 서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그 코어 근육이란 자존감이다. 자신에 대한 충분한 사랑과 이해가 있다면 어떤 오지랖이나 무례한 언행이 오가도 단단한 갑옷처럼 우리의 마음을 지켜줄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을 수록,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라는 말처럼 쉽게 상처를 받고 더욱 오랜 시간 아파하고 인간 관계에 대해 더욱 회의감이 들게 된다. 야생과 같은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한 마음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당신은 자존감도 아직 약하고 사람에게도 쉽게 기대는 경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기둥으로 돌아가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그 기둥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흔들리고 있는 그 것을 바라보아라. 자신이 왜 저 자리에 있었는지 의아해질 것이다. 또 멀리서 보았을 때야 그 기둥의 전체를 볼 수 있게 되고 왜 흔들리고 있는지, 어떻게 고쳐줄 수 있는지 타인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 또한 그제서야 생길 수 있다. 누군가가 정말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준다면, 또 자신이 계속 상처를 받는다면 과감하게 멀어져라. 거리를 두고 연락을 끊고 잠시 자신의 시간을 가져라. 그 시간 이후에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 지는 서로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당신을 따뜻하게 품어줄, 당신과 함께 성장해줄 잘 맞는 그런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굳이 잔인한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 말자. 가시나무는 자신의 가시가 누군가에게 피 흘리는 아픔이 된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과감히 멀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된다. 함께 한 시간이 아까워서,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서, 내 문제인 것 같아서 붙들고 있는 그런 관계들을 돌아보자.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당신에게 잔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지를 쳐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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