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너 많이 변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어느 모임에 참석하든 듣게 되는 말이다. 좋은 의미일 때도, 안 좋은 의미일 때도 있다. 눈치가 없는 사람도 누구나 뉘앙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15년 정도 알던 사이부터 비교적 최근 알게 된 사람까지, 얼마동안 만나지 않다가 보게 되면 대부분 비슷한 말을 꺼낸다.
나는 매번 달라진다.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한다. 성장을 해서일 수도, 퇴화를 해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 나는 항상 변화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어제 봤던 사람도 너 많이 변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때로는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고 그 과정이나 상황을 설명하기 귀찮을 때면 그들이 원하는 그 때 그 모습을 보여주며 시시덕거리기도 한다.
가끔 나도 내가 낯설다. 어제 했던 생각도 오늘 달라지고, 그제의 목표도 다른 목표가 되기 일쑤이다. 과거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년의 나는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던 열혈 운동 청년이었다. 이 속도에 질린 사람들은 나를 떠나가기도 한다. 혹은 반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사람들을 내가 떠나가기도 한다.
옛날에는 이런 내가 스스로 못미덥기도 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나만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 사람들은 그대로 자신의 모습과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지만, 나만 고장난 인공위성처럼 궤도를 이탈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으로부터 별종 취급을 받았고, 여전히 어머니께서는 그건 너라서 그런 거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시곤 한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잘 못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들어왔던 말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발버둥치고자 한 결과물이었고, 뒤돌아봤을 때 그들은 제자리에 있거나 같은 길을 멤돌고 있을 뿐이었다. 옆을 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걸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주위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져갔다.
여전히 이상한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 악착같이 사느냐, 힘들게 사느냐 등 다양한 문장으로 날 걱정하는 척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속도와 방향이 있는 것이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지점이 있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곳까지 다다르기 위해서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갈 뿐이다. 나에게는 그 것이 조금 더 멀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 긴 마라톤 같은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만을 바라보며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으며 참는다면 그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즐기는 사람이 더 나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변해가는 것은 좋으나 그 과정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제든지 돌아봐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