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적 여행기

누군가와 함께 떠난다면

by 서글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간다면 걸리적 거리는 일이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그 사람의 식습관부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처음엔 조금 거슬리는 정도이지만, 체류가 길어질 수록 눈에 들어간 먼지처럼 깊은 짜증을 유발한다. 친한 친구와, 혹은 연인과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사이가 틀어져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몇 십 년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온 서로 다른 사람들이 24시간 함께 붙어 있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주관식 문제답게 정답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애초부터 혼자서만 여행을 다니는 것도, 모든 걸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것도, 대화를 해보는 것도 전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과 잘 맞는 친구를 찾아 모든 방면에서 즐겁게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내가 최근 경험했던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하나의 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쉽고도 간단한 한 문장은 쉽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면 우선 자신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내 입장을 모두 내려 놓아야 상대방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신념, 습관, 고집 등을 내려놓은 후에야 다른 것을 올려 놓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제서야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우선 큰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그 시도 이후에 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은 무엇인지 알겠는데 그 내용이 터무니 없거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것은 서로 쌓아온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은 기독교의 인생을 살아왔는데 상대방은 불교의 인생을 살아왔다면 그 인생의 역사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때 해야 할 행동은 그 사람의 데이터를 다운로드 하는 것이다. 그 입장에 들어서게 된 맥락을 그제서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안 된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그 맥락을 강제로 다운로드 당하게 되어 버리면 거부반응이 온다. 일종의 방화벽이 그 데이터를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방화벽을 내린 후에 활짝 열려 있는 상태가 되어야 상대방의 맥락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컴퓨터를 공부하다보니, 인간이라는 존재도 컴퓨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종종 기계에 빗대어 생각해보곤 한다.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그 맥락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 다음으로 남은 것은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가족조차도 그 사람을 바꿀 수 없는데 고작 1년에 몇 시간만을 함께하는 누군가가 그 사람을 단 시간 내에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행을 하는 그 시간동안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잠깐 바꾸어두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자신이 원래 깔끔한 성격이라면, 잠깐 그 기간 동안만은 어지럽히는 것을 좋아하는 상대방의 장단에 맞추어주는 것이다.



여행은 어쩌면 짧은 시간이다. 외면할 수도 있고, 도망칠 수도 있다. 다툴 수도 있고 누군가와 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흔히 말하듯 우리의 인생 또한 하나의 여행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에 체크인하고 죽는 그 순간에 체크아웃하게 되는 가히 100년에 다다르는 긴 여정인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동행하기도 한다. 그 순간마다 외면하고 도망친다면 혼자서만 하게 되는 쓸쓸한 여행이 될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방법을 인생에도 적용해보자. 자신과 정말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자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속 사정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보자. 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그냥 자신이 변화해보자. 그 짧은 여행을 충분히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 수 있듯이, 이 긴 여정을 행복으로 가득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긴 여행 또한 쉬운 일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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