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 큰 컨퍼런스를 열어 사내 기술과 문화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최근까지도 코로나로 인해 사전 녹화 및 온라인으로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다. 그때 발표자들을 보면서도 참 대단하다, 말을 참 잘한다 등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로만 생각했다. 특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개발적인 내용을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풀어쓴다는 것이 어렵고 귀찮은 일로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올해 컨퍼런스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온 것을 보았다. 사내에서는 최초로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파르나스 호텔의 공간을 빌려 굉장히 큰 규모로 컨퍼런스를 열 계획이었다. 하필 올해 많은 도전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했던 경험을 풀어내는 발표 정도는 어렵지 않은 도전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올해의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발표를 신청하고 있었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어려웠다.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기도 했다. 발표자들끼리 모여 전문 강사님께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교육받기도 했다. 팀원들을 모아두고 사내 리허설을 진행하며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발표 자료와 대본을 여러 차례에 걸쳐 작성하고 수정했다. 대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여 작성해 둔 대본을 폐기하기도 했다.
대본 없이 발표를 진행하려면 모든 장표의 내용과 흐름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어야 했다. 학생 때 발표를 할 때에는 최대한 대본을 외워두고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연습을 했었다. 하지만 대본 없이 하려니 연습을 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떠오르고 장표를 수정하게 됐다. 발표 전날까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내용이 풍만해진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머릿속에서 발표라는 큰 일을 놓지 못한다는 것은 단점이기도 했다.
원래는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싫어했다. 조별과제를 할 때에도 주로 자료를 수집하거나 제작하는 쪽에 속했다. 항상 발표를 도맡아 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나와는 다른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발표를 준비해 보니 그들도 다 같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 동료 발표자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발표하는 것을 좋아해 거의 모든 발표 기회에 참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발표를 좋아하는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남기기 위해 엄청난 연습을 진행한다고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발표 솜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피와 땀이 양분이 되어 길러진 것이었다.
나름 연습을 많이 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몇 백 명이 되는 관중 앞에 서니 입이 바짝 마르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연습할 때는 나오지 않았던 이상한 제스처가 나오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시답잖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15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어찌어찌 발표를 잘 끝내고 난 후, 참가자들의 후기에 유익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발표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경험에 대해 공유할 수 있었고, 느꼈던 인사이트를 함께 나누고 짧은 시간 안에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개발자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은 본인이 맡은 프로젝트에만 몰두하여 제한된 시각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업무 경험이나 그것에서 깨달은 것과 느낌을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선으로 업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개발 쪽에서는 특히 많은 컨퍼런스가 진행되지만 이제껏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직접 발표자로 참가함으로써 컨퍼런스가 가지는 선순환과 영향력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다음에도 발표자로 참가할지는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할 일이지만, 참가자로서는 적극적으로 돌아다녀보고 싶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습득하고 나의 것으로 바꾸어낼 것이다. 또 기회가 오는 어느 날, 나의 것을 활짝 열어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