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을 이끌고 붐비는 지하철, 사람에 끼어 모든 체력을 소진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개찰구에 카드 - 기후동행카드를 출시한 건 서울시의 최대 업적 중 하나다. - 를 찍고 나오는데 거센 바람이 지하까지 불어와 안내 표지판 하나를 넘어뜨리는 광경을 마주했다.
애매하게 그 현장을 지나온 터라 다시 돌아가서 일으켜 세울까 하였지만 그날따라 지쳐있던 몸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따뜻한 집에 돌아가 쉬는 것을 목표로 빠른 걸음을 계속하였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괴성과 함께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께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느라 넘어져있는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발에 걸려 넘어져계셨다.
다행히 크게 다치시진 않아 보였다. 아주머니는 당황해하며 다른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표지판을 옆으로 멀리 치워버리시고는 제갈길로 다시 걸음을 옮기셨다.
부끄러웠다. 처음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말았던 나 자신이. 아무도 다치지 않게끔 할 수 있었지만 나의 이기심은 휴식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 순간 다짐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비록 그것이 내게 손해가 되고 번거로운 일이 되더라도, 내 수고로 인해 누군가 편안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오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