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순간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다. 무거운 겉옷을 옷장에 넣고 한껏 가벼워진 겉옷을 꺼낸다. 낮에는 따뜻하다가도 여전히 밤에는 쌀쌀하지만.
아파트 단지 안 쪽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에서부터 꽃이 핀다. 앙상한 가지를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한 봄빛으로 풍성하게 채워 넣는다.
지난주쯤 논현 고개 쪽 언덕 어느 한편에 피어 있는 목련을 보았다. 담장을 넘어 높은 곳까지 가지를 뻗어 파란 하늘을 새하얗게 덧칠하고 있었다. 두툼하고 품격 있는 목련의 모습은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두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오늘 다시 찾은 그 나무는 다시금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픈 가녀린 나뭇가지들만 꽃샘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번의 그 품격 있는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그 나무의 숙명을 곱씹어보았다.
꽃을 피우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이 지속되는 기간은 잔인하리만큼 짧다. 운이 나쁘면 꽃을 활짝 피우자마자 내리는 빗물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할 때에도, 누구나 와서 구경하리만큼 아름다울 때에도. 그것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
꽃잎이 져도 슬퍼하지 않는다. 전성기의 모습을 양분 삼아 다음 기회가 왔을 때에는 더 크고 화려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길고 행복한 순간은 짧은 것처럼 말이다. 학창 시절 몇 년 동안 공부를 하는 고통을 견뎌 대학교에 합격해도, 잠깐의 기쁨만 있을 뿐,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연애도,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다 마찬가지이다. 기쁨의 순간은 야속하리만큼 짧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고통을 묵묵히 살아낸다. 언젠가 꽃 피워낼 그 순간을 위하여. 잠깐의 행복이 스쳐 지나가더라도, 그것을 보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