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와 함께 마무리한 25년

자우림 콘서트 방문기

by 서글

2025년의 마지막 분기는 이직과 연애가 겹치며 유난히 정신없이 흘러갔다. 12월은 생일과 크리스마스, 연말 약속까지 이어지며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흐릿하다. 그런 와중에 오래 미뤄두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마침내 해냈다.


가끔 여자친구와 음악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꽤나 말이 잘 통한다. 연인과 관심사가 맞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운 같다. 게다가 서로 좋아하는 가수까지 겹칠 때면, 괜히 이 사람이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콘서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는, 죽기 전이든 그 가수가 은퇴하기 전이든 꼭 한 번 공연장에서 직관하고 싶다고 생각한 가수가 몇 팀 있다. 그중 하나가 '자우림'이다.


한때 나는 영화를 보고 그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거나, 오래된 라이브 무대를 편집해 개인 채널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자우림의 음악은 늘 나의 콘텐츠 중심에 있었다. 12집 앨범 [LIFE!] 발매 소식을 듣고 콘서트 일정을 찾아보니, 연말 공연이 아직 예매 중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애인과의 술자리에서 슬쩍 자우림 이야기를 꺼냈다.


“자우림 콘서트 안 하나?”
날짜를 확인하던 애인은 눈치 빠르게 말했다.
“자리 있나? 있으면 보러 갈래?”
멋진 여성.


우리는 그렇게 3일간 진행되는 공연 중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날인 12월 28일로 예매를 마쳤다. 공연 당일, 붉은빛 무대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JAURIM’ 이니셜이 적힌 LED 전광판이 갈라지며 공연이 시작됐다. 김윤아는 12집 수록곡 중 유독 가슴을 뛰게 했던 곡을 부르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시작부터 소름이 돋았고 그 감각이 꽤 오래 지속됐다. 김윤아는 때로는 소녀 같고 때로는 여왕 같다. 4번 트랙 <KARMA>에서 그녀는 전장을 통솔하는 잔다르크처럼 다가온다. 질주하는 기타와 드럼 사이에서 날카롭게 뻗어 나오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관객을 압도한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기에 더없이 완벽한 선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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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집 앨범과 같은 제목으로 진행되는 공연인 만큼, 대표 명곡보다는 수록곡 위주의 셋 리스트가 이어졌다. 김윤아는 “이 앨범은 26년 여름 페스티벌에서 더 빛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봤다. 만약 자우림이 헤드라이너로 서는 페스티벌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신나는 분위기와 달리 가사는 유난히 우울하고 슬프기만 한 노래들을 좋아해 줘서 고맙다는 그녀의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사실 나는 자우림의 경쾌한 노래들보다, 사랑과 인간관계를 다소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더 좋아한다. <미안해 널 미워해>, <스물다섯, 스물하나>, <있지>, <영원히 영원히> 같은 노래들. 괜히 마음이 무너질 때 찾아 들으면 말없이 어깨 한쪽을 내어주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노래들이다. 내심 기대했던 <봄날은 간다>와 <야상곡> 등. 김윤아의 솔로곡들을 들을 수 없었던 건 조금 아쉬웠지만, 완전체 자우림의 무대가 주는 밀도 앞에서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위에 언급한 곡들 중 <영원히 영원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2시간 동안 약 15곡이 넘는 무대를 이어간 것 같다. 음원보다 더 세련되고 단단한 보컬을 소화해 내는 김윤아를 보며, 슈퍼스타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윤아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인지, 중간에 기타리스트 이선규가 <Golden>을, 베이시스트 김진만이 <Soda Pop>을 귀엽게 열창하며 웃음을 제공하기도 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모두가 기다리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입장할 때 둘러보았던 관객석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각자의 청춘 속 한 장면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같은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세월과 함께 익어온 자우림의 음악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건드려 왔다. 자우림의 콘서트는 단순히 공연을 ‘본다’기보다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음악으로 감정을 나누는 경험에 가깝다. 애인은 콘서트가 썸 타는 연인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가까이 지내봐야만 알 수 있는 모습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느낌이라고. 이제 나도 자우림과 썸 타는 중이다.




“2만 원짜리 마이크로 녹음하던 시절도 있었고, 12만 명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여기까지인가 싶을 때마다 광고가 들어왔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불러주기 시작했어요. 모든 건 타이밍인 것 같아요.” - 공연 중 김윤아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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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후 빠른 성과에 목이 메어, 상황이 진전되기만을 급하게 좇던 2025년의 마지막 분기. 김윤아의 말처럼 타이밍이라는 기회는 꾸준히 이행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유난히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이 요동칠 때면,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자우림을 찾는다. 나의 영원한 뮤즈인 자우림. 그들의 노래를 오래 듣기 위해, 건강히 오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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