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내용에 내밀하며 불쾌할 수 있는 경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불쌍해 보이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닙니다.
'흙수저', 이 말을 지금까지는 그냥저냥 데면데면하게 지나쳐 왔다. 오늘 우연히 보게 된 익명 커뮤니티 글 때문에, 이 말이 마음을 훅 후벼 파고 들어왔다. 아마도 내 또래의 흙수저가 썼을, '흙수저 집안의 특징 25가지'라는 글이었다. 반찬을 따로 옮겨 담지 않고 반찬통 채로 식탁에 올린 모습을 담은 섬네일 사진을 보면서, 밖에서 남을 돌봐 주는 노동을 하고 가사 노동까지 도맡는, 집에서라도 설거지 그릇을 최대한 늘리지 않으려 했을 어떤 중년 여성의 마음을 떠올렸다. 참 부조리해.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읽기 시작해서, 후반에서는 명치를 맞은 듯한 느낌에 창을 닫아버렸다.
"6. 밖에서 자식을 까내림. 자식 후려침. 본인이 털털하다고 착각함"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비난하지만, 밖에서는 나를 치켜세웠던 것 같다. 보다 뼈아픈 것은, 어떤 사람을 긍정적인 말로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대화의 양이 터무니없이 적었고, 부정적인 말을 더 오래 기억하는 인간의 편향적 사고방식 탓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족과 친척들의 말은 대부분 짧고 간결한 비난의 말이다. "잘난 체하지 마라", "너는 다리가 두꺼워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지 않는다", "(엉뚱한 맥락에서 농담조로) 나중에 성형 수술하려면 돈 많이 들겠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가까운 대안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하니)네 엄마 아빠 형편에 말이 되니. 분수를 알아야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표현에 서툴다. 아무리 진심이어도 좋은 마음을 표현하려고 할 때면 어색한 표정과 말투가 되곤 한다. 반대로 부정적인 말을 할 때면 진심보다 더 날 선 말이 나갈 때가 있다. 동료로서 최악의 자질이다. 이제 스스로 그 사실을 알기에 반대로 행동하려고 일부러 조절한다. 사회성을 발휘한다고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몹시 에너지를 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리액션에 상대가 감응할 때면 나도 힘이 나서 긍정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는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한다.
"23. 길거리 지나가다가 원룸 같은 거 보이면 저거 내가 지은 거다 하면서 뿌듯해함" 우리 아빠도 건설 노동자다. 분명 여러 기술을 가진 것으로 보였지만 그다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인력 사무소에 나가 일을 받고, 달력에 일한 날짜를 스스로 체크하고, 현금으로 임금을 받아서 술을 마시고 자정을 넘겨 귀가해서 남은 돈을 엄마에게 주고, 그러면 엄마는 한숨을 쉬지만 화를 내지 못했다.
그런 아빠가 내가 십 대 후반이던 언젠가 온 식구를 모두 모아서 한 식당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분위기는 살얼음판 같았다. 동생들은 서로 극도로 사이가 나쁜 데다 아빠를 두려워하고 미워했다. 나는 가족 누구에게도 별 감정을 느끼지 않았는데, 장기간 가출했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여기 아빠가 지은 거다"라고 자랑하며 사장님에게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사장님의 반응은 그다지 살갑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아니 상당한 긴장 상태로 밥만 먹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우와, 정말요' 같은 말을 했던가,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면 보다 자연스럽게 아빠가 원하는 리액션을 해 줄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저 이 상황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옆에 앉아 있는 동생들은 '우와 정말요'는커녕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았고, 사장님은 왜 아빠에게 별 대꾸를 해 주지 않는지 모르겠고, 엄마는 아마 나와 비슷했을 것 같은데, 나는 무언가가 아빠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극도로 긴장했다. 아빠가 누군가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곧 그게 내가 아빠를 무시한 것으로 둔갑해 갑자기 얻어맞을 수 있다는 것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아직도 남아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 특히 나보다 나이가 20세 이상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을 때가 많다.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까 봐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극복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내가 명치를 맞았다고 느낀 것은, 그날 내가 했던 반응, 그러니까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그 모습이 어떻게 해석되었든 아빠에게 상처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어서이다. 나는 평생 동안 아빠의 직업을 진심으로 존중했고 아빠의 일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빠에게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아빠의 뿌듯한 한 마디에 아무도 감응해 주지 않았던 그 순간이, 익명의 인터넷 게시글에서 입체적으로 되살아났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노동의 성과를 혼자 뿌듯하게 생각하고 자식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자식은 '가난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요약하고 자조하는 모습... 이 글을 본 '아빠'들은 얼마나 상처받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그 장면을 소환했다.
글쓴이가 원망스러웠다.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기술적으로 한국 6070년대생 부모의 특징을 참 잘 포착했다는 평가도 했다. 이 사람은 흙수저 당사자이거나 최소한 (윤리 없는) 연구자일 수밖에 없다, 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흙수저 당사자라, 그 말은 꽤 어색하게 느껴졌다. 당사자가 존재하려면 스스로 자처하고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정체성일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왜 지금까지는 정체성으로 대접받지 못했나?
일단 첫 번째로 가난은 모호하다. 얼마나 가난해야 진정한 흙수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난의 기준은 무엇일까. 단칸방에 살아도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지 않고 충분한 애정을 쏟으며 공통 경험과 대화 속에서 문화자본을 상속해 줄 수 있다면 그 자녀는 <흙수저 특징>에서 말하는 '흙수저'가 아닐 것이다. 소득 기준상 차상위계층을 면했더라도 그 소득이 저임금 고강도 장시간 노동의 산출물이며 부모가 자녀를 노후를 위한 투자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 자녀는 <흙수저 특징>에 너무나도 공감할 것이다.
두 번째로 가난은 과거형이 아니고서는 나의 고유한 특성으로 내세우기 어렵다. 무릇 정체성들은 저항적인 자기애를 내포하기 마련인데, 가난은 그걸 딛고 일어서지 않은 사례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되기 어렵다. 저항적인 언어로 가난을 재정의하고 가난하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건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가난을 벗어난다. 결국 흙수저가 정체성이 되려면 나의 어떤 찌질하고 못난 점들의 원인을 출신 배경에서 찾고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거다. 왜냐, 이미 '은수저 특징'이라고 할만한 어떤 인간상이 관계를 원만히 맺을 수 있는 건강한 인간상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못한,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이다, 라는 걸 '하지만 앞으로'를 붙이지 않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 글도 그렇지 않나. 지인이 읽을 걸 의식해서 나는 그렇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고 애써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흙수저들이 흙수저로서 더 많이 말하고 또 잘 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대학을 나오거나 엄청 똑똑해지지 않고서도 평범한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또 발굴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흙수저 편집자로서 흙수저를 더 많이 발굴하겠다,라는 어떤 허술한 목표를 세워 보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