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원작
이 책도 독서모임에서 추진하던 책이라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바쁜 일정으로 모임에 참석하지는 못했다.(아쉽)
그래서 발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없고 책에 대한 감상만 남아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는 편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 작품은 당시 뮤지컬로 상연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뮤지컬을 먼저 보고, 원작인 이 소설을 꺼내 읽게 되었다.
사실 뮤지컬을 보고 나서는 '생각보다 괜찮네' 정도의 평이었다. 아무리 잔인하고 폭력적이어도 웬만하면 19세 미만 관람 금지를 때리지 않는 이 판에서 신분증 검사 운운하며 만 19세 미만 관람 금지를 강조했고, 결국 정사씬에 대한 논란이 첫공부터 있었다. 아이고 두야...
내용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궁녀와 동성 스캔들이 난 세자빈의 이야기이다. 모티브가 되는 실제 사건도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사를 꽤나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약간은 반성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교과서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하튼, 동성 연애여서 19금을 걸어재낀 건 절대 아니고.(그렇게 치면 과장 좀 보태서 대학로 뮤지컬의 8할은 청소년 관람 불가가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극중에 정사씬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수위 조절 실패로 인해 말이 좀 많았던 것 같다.
성적인 건 영 취향이 아니라 혼자서는 절대 안 볼 뮤지컬 중에 하나였는데, 어찌저찌 해서 표가 생겼다. 아는 동생이랑 같이 갔는데, 초반부터 연석으로 앉은 걸 약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같이 간 친구가 동성이라 괜찮았는데, 남녀 커플도 분명 객석에 계셨다...그분들이 괜찮으셨을지 참으로 궁금했다(?)
정사씬이 크게 3번이나 등장한다. 아니 60분짜리 극에서 이런 정사씬 분량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것도 시작부터 화끈하게(...) 정사씬으로 시작한다. 아 열받아. 뭣이 중헌디...
심지어 공연 초반에 이에 대한 말이 나오니 분량을 줄인 게 이 정도랬다. 뭐야?
그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 그 장면들을 넣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자빈의 성욕 강조...? 그것은 너무 불경한 것이 아닌가. 시대가 금지한 사랑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영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건 애당초 내가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너무 숭고하게 생각하고 있나? 이건 요즘 들어 계속 내 발치에 걸리는 문제이다. 개인적인 문제이니 이만 넘어가고.
다행히도 이 극을 보고 나서 후기에 욕설만 남지 않은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포괄적 의미의 '사랑'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이 궁금해졌다. 정사씬도 공연처럼 시각적으로 충격을 때려박지 않는 텍스트라면 더 괜찮을 것 같기도 했고.
원작 얘기로 넘어갈 것처럼 정리했지만 공연 얘기를 조금 더 덧붙여 보자면, 국악풍의 넘버가 마음에 들었다. 또, 국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뻑갈 수밖에 없는 말장난 식 가사가 기억에 남았다.
대략
사라지는 -> 살아지는
연인이 아닌 인연으로
사랑 사람 사랑
이런 식이었다. 소위 말하는 '라임을 맞춘' 것이다. 원작에도 같은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잘 가져온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원작으로 좀 넘어가보겠다.
뮤지컬에 붐따를 한가득 날리고 난 직후라서인지, 원작은 훨씬 마음에 들었다.
단지 너 부처가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아느냐? 해탈이란 병이 낫는 일이야. 사람이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 병을 지니는 법이라, 기질에 따라 그 병을 특히 심히 앓기도 하고 가벼이 앓기도 한다. 사는 동안 때를 만나 증상이 더해지기도 하고 덜해지기도 한다. 허나 절대로 완전히 낫지는 않아. 이 병이 다 나으면 사람은 부처가 된다. 그러니 부처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란다.
- 삼색도, p. 101 ~ p. 102
태애가 말하는 '병'이라는 거, 태애가 계속 앓는 속병처럼 상사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보통 해탈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에 올랐을 때 해탈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 원동력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차마 버릴 수 없다. 그러니 모두가 '병'을 앓고, 해탈은 어려운 길이 된다.
그리고 태애에게는 더욱 어려운 길이다. 이름부터 '큰 사랑'인 태애는 사랑이, 정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자꾸만 사랑을 갈구한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그러나 결국 태애는 깨닫는다. 사랑을 하는 모두의 마음을. 모두가 자신처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어보일 수 없고, 사랑은 각자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큰 사랑을 하는 태애는 부처와 같다. 사랑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에게 나의 온전한 마음을 건넨다는 것은 나 자신을 떼내 주는 것과 같다. 부처의 태몽이 코끼리였듯 태애의 태몽도 코끼리였다. 큰 사랑을, 큰 마음을 가진 태애는 누구든 품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향도, 소쌍도, 단지도 사랑했을 것이다.
당시 작품을 읽은 직후 남겨두었던 감상평이다.
<삼색도> 독서 모임 이후, 모임장께서 나의 후기가 궁금해진다고 하셨다. 모임에서 너무 많은 불호 후기들이 쏟아졌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꽤 이 책을 마음에 들게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극중에서도, 원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세자빈 태애와 궁녀 소쌍이 공식커플(?)인데, 소쌍이 다른 궁녀인 단지와 바람을 핀다는 소문(남들은 태애와 소쌍의 관계를 모르니 그냥 소쌍이 단지와 놀아난다고 한다.)이 태애의 귀에 들어온다. 그래서 태애가 히스테릭을 부리기도 하는데...이 이야기는 약간 스킵하고.
하튼 이후로 태애가 시름시름 앓고 있으니, 소쌍이 밤중에 궁을 탈출해 덕수궁?(정확하지 않다. 하튼 세자빈이 머무는 곳에서는 멀다.) 정원에 있는 코끼리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병주고 약주고?) 소쌍이 전해주는 소문으로만 듣던 코끼리가 궁금했던 태애는 소쌍, 그리고 코끼리를 관리하던 궁녀 단지와 함께 남들 몰래 궁을 나선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이 과정에서 대체 왜 태애랑 단지랑 또 키스하고 자빠졌니. 이 열받는 삼각관계는 뭐야?
라는 생각을 뮤지컬을 보면서 했지만...원작을 읽고 나니 조금은 더 태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태애의 안에는 해소될 수 없는 너무 큰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여한이 죽은 자에게만 남는 것은 아니옵니다. 매일같이 곁에 두고 보는 사이에도 여한은 남을 수 있사옵니다. 맺지 못한 말끝이 무엇일까, 꾹 눌러 감춘 생각이 무엇일까...곱씹다 보면 자연히 그 상대방을 계속 떠올리게 되고 그리게 되고 그것들이 모여 연모하는 마음이 되나니, 정보다 무서운 것이 이 산 자들 간의 여한일 테지요. 그러니 모쪼록 여한을 남기소서.
- 삼색도, p. 105
밀당하라는 말을 예쁘게도 한다. 그러나 맞는 말이다.
상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관계 지속의 의미가 있는가? 양파처럼 한 겹, 한 겹 벗겨가며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맞춰가는 것 또한 재미이고.
어쩌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인가 보다.
- 삼색도, p. 109
이 부분이 내가 말한 끝내주는 라임이 나오는 구절이다.
태애는 사랑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녀의 사랑이 충족되는 날이 올까? 싶지만, 어쨌든 코끼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태애와 소쌍의 이야기보다, 단지 의 서사에 마음이 갔다.
단지의 언니는 코끼리를 관리하는 궁녀로 궁에 들어왔다가, 내시와 눈이 맞아 결국 형벌을 받고 죽는다.
어쨌든 금지된 사랑이라는 점에서 태애와 소쌍의 관계와도 일맥상통 하겠지만, 태애와 소쌍의 관계는 태애가 권력으로 일방적으로 주무르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단지의 언니와 내시의 사랑은 좀 더 '진정한' 사랑 같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진심이라는 거다. 그 점이 좋았다. 죽음에 이른다해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너무 피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인가?
아직까지 나는 이상을 좇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코끼리'는 꽤나 큰 상징을 갖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의미를 명확하게 찾아내지는 못했다.
기회가 되면...다시...읽게 될까...?
짧아서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코끼리의 의미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다시 한 번 책을 펼쳐보는 것으로 정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