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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의 자유 Jan 08. 2024

#성벽깨기: 겸손해지기 위한 독서

책을 다시, 제대로 읽기 시작한 이유

#성벽깨기 시리즈 소개: 나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그동안 쌓아온 ‘나’라는 견고한 자아의 성벽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과정을 담은 글의 모음.


미국 2년차 시작할 무렵 여름, 나는 책을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이야기들과 나 혼자의 삶으로만은 얻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에 귀를 열고 들어보기로 했다.


20대 초반까지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함이었고 누군가에게 내가 얻은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책에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거나 좋은 글귀를 볼 때마다 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하며 상상하는 순간이 많았다. 글의 내용을 곱씹고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에 집중하기 보다 순간 얻은 지식을 다른 이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리고 20대 후반에는 내 삶이 버거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삶을 엿볼 생각도, 힘도, 동기도 없었다. 일도 바빴지만, 우울증이라는 내면의 칼부림을 진정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장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생각하며 내 숨을 쉬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참 우스운게, 그러면서도 만약 살게 된다면 나는 지식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막연한 바람은 있었다. 그런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가끔 책을 사서 줄거리를 파악하고 꽂아두기 일쑤였다.


책의 종류를 차별하곤 했다. 자기계발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뭐든 알아서 노력하면 되는거지’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삶을 사는건데 마치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에요.’ 혹은 ‘이런 삶이 참 좋던데, 참고해볼 필요가 있어요.’ 라는 메시지가 거북했다. 삶의 원칙을 나열해놓은 책, 빠르게 념겨볼 수 있는 내용들을, 아까운 종이 몇 만 부를 찍어서 파는게 영 내키지 않았다. 대신 언제나 인문학, 철학, 정치학, 경제학 쪽의 가판대만 들여다보았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들이 맞았지만, 그것보다도 이런 책다운 책을 읽어야만 책을 읽는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구매한 책의 삼분의 이는 관상용이 되었다. 앞뒤 겉표지, 그리고 가끔 작가의 말만 읽힌 채.


그러다 30대 초반, 미국 박사유학생이 되고 나서 또 다시 '책을 많이 봐야지' 하는 애매한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는 동네서점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서처럼 책의 내용이 빠르게 와닿지 않았다. 제목에 관용어가 많아 무슨 말인지 몰라 책장 앞에서 서성대기 일쑤였다. 어떤 날에는 정치 부문 책장 앞에 서서 책 제목의 뜻을 하나씩 구글로 검색하기도 했다. 머릿말을 읽고도 예전처럼 '아 이런 맥락이구나' 라고 빠르게 이해하는 척을 하기도 어려웠다. 책을 함부로 평가할 수도, 고르기도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작아지는 못마땅한 느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저 책들을 읽어야 지식이 쌓이는거겠지' 하며 American politics에 관한 책을 하나 집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지식을 뽐낼 상상을 하며 카드를 꺼냈다.


그 때였다.


'너 이번에도 애매한 자만심으로 책을 꽂아둘래?' 순식간에 던져진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응? 왜?' 나는 잠시 멈춰서 반문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한 번 느껴볼래?' 진정한 의문문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섰다가 다시 이동했다. 사려던 책을 들고 다시 가판대로 가서 그 두꺼운 책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빈 손으로 서점을 나왔다. 집으로 향하며 나는 나와의 진솔한 대화를 이어갔다.


'응. 읽어보고 싶은 책을 사고, 시간을 들여서 읽고, 내용을 사유하는 것,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제대로 들어보고 싶어.'

'무엇보다 나의 허영심을 놓아주고 싶어. 너무 귀찮고 번거로웠어. 아는 척 하는거.'

'겸손해지면 내 존재가 가벼워질거같아.'


그랬다. 책을 제대로 읽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무심함과 귀찮음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자세히 읽지 않아도 대충 안다는 자만심이었다. 나의 허영심을 채우고자 했던 지난 구매들이 ‘빈 속 강정’과 같았음을 깨달았다. 


그 후 나의 마음은 가벼워졌고, 나의 생각은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여름부터 일년 반 동안 30권 이상의 책을 정독했다. 매일 아침 6시 반 경 30분에서 1시간. 늦잠을 자거나 이른 아침 일정이 있을 때는 단 10분이라도. 박사과정 중 수많은 논문을 읽어야하는 입장에서 시간을 어떻게 낼지 의문이었는데, 되더라. 역사, 철학, 음악, 심리학, 사회학, 인문학, 소설, 시 등에 걸쳐 ‘재밌어’ 보인다 싶은 책들을 읽었다. 대부분 영어 책이라 느릿느릿 곱씹으며 읽었고, 한국 책이 고플 때는 게눈 감추듯 밥을 먹는 것 처럼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읽은 책들은 나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부터 흥미로운 연구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사유의 출처가 되고 있다.


이제는 책의 내용을 누군가와 나눌 때 ‘정보를 전달해야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재밌어서, 무언가 깨달은 기분이 좋아서, 새로 느끼게 된 점들이 신기해서, 더 알고 싶어서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겸손해져야겠다는 절박함. 나의 겉치레 된 성벽을 깨고 나와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 그 첫 번째 단계를 나는 ‘독서의 동기'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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