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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의 자유 Jan 08. 2024

#살아남기: 왜 내가 추가 비용을 내야 하죠?

미국 델타 항공기 캐리어 추가 $100 사건으로 본 미국 서비스 마인드

*#살아남기 시리즈 소개: 저자가 직접 경험한 미국 서비스 문화와 갈등 사례, 그리고 그 저변의 미국 사회문화적인 특징들을 분석하고 한국과의 차이를 고민하는 시리즈 입니다.


애틀랜타에서 1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항 카운대에서 28인치와 26인치 가방 두 개를 체크인하려고 벨트에 하나씩 올려두고 있었다. 두 번째 가방을 올리려고 할 때, 델타 직원이 "가방 1개만 체크인 가능하니, 다른 하나는 추가 비용 $100를 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델타 항공사에서 확인한 'the estimated number of check-in baggage allowed (체크인 가능한 수하물 예상 개수)' 캡처 화면을 보여주며, 여기에서 내 계정은 2개라고 확인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모든 것을 캡처하고 저장해 둔다). 그러자 직원은 그 숫자는 'the estimated (예상치)'일뿐이라며, 'the real airline system (진짜 항공사 시스템)'에서는 1개라고 나온다고 했다.


왜 체크인 가방 개수라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가 '고객들이 이용하는' 항공사 홈페이지와 직원들이 사용하는 '진짜' 항공사 시스템이 달라야 하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아 따져 묻기 시작했다. 왜 다르냐고.


그러다 직원은 '원래 그런 거'라며, 가방을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이런 양다리 같은 시스템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the estimated (예상)' 수치가 'confirmed(확정)'이 아닌 건 맞으므로, 내 부주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가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직원에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몇 초의 정적 후, 직원이 그 가방이 몇 인치냐고 물었다. 도와주겠다는 식의 표정이었다. '26인치'라고 나는 답했다. 그러니 직원이 손을 활짝 펼치고 웃으며 "Oh, you can carry in for free!" 라며 기뻐했다. "What? How? I have never done that, and this is bigger than the size limits written on this sign." 나는 기내수하물 사이즈 규격표를 가리키며 의아하다는 투로 반문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정말 괜찮다고, 가능하다며 들여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투로 웃으면서 "Have a nice trip, lady"라고 했다. 나는 허락을 받았지만 등살에 떠밀리는 기분으로 보안검색대로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직원의 말을 안들을 이유가 없었지만, 의아하고 찝찝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대륙으로 여행과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이 사이즈의 가방을 기내로 들고 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짐칸에 안 들어갈 거 같았다. 이런찝찝함이 진짜 문제를 초래할 줄이야...


보안 검색은 별문제 없이 통과했다. 그럼 항공기에 가져갈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나만한 가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 들어가려다가 문제가 생겨서 비행기를 못 타면 안 되겠다 싶어 미리 확인을 하기로 했다. 게이트 데스크에 가서, "체크인 쪽에서 26인치가 carry-on 된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되는 거 맞나요? 아무래도 이상해서."라고 물었다. 그러자 즉시 "You have to pay $100 (백 달러를 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응?


나는 체크인에서 들여보내줘서 가지고 온 거라고, 체크인 데스크에서 가방을 돌려보낼 수도 있었는데 잘못된 정보 안내로 여기까지 온 거니 나는 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옆에 있던 중년 매니저가 본인이 맡겠다며 나에게 오더니, 체크인 데스크에서 잘못한 건 본인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고, 어쨌든 100달러를 내야 하는 게 룰(rule)이라며 매뉴얼 같은 말만 네 번을 되풀이했다. 마치 인내하는 표정으로 어린아이를 가르치듯이.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나에게 이때다 싶어 몰아붙이듯이 물었다. "Ok. Which credit card do you want to pay with?"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있는 나에게 매니저는 한 번 더 말했다. "If you have an A** card, you can get discount. Otherwise, you have to pay in full."


나의 인내는 거기까지였다. 그저 돈 돈 돈. 여기에서는 과정도,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이건 직원의 잘못된 안내로 발생된 비용이니, 내가 부담해야 할 이유가 없고 당신들이 가방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다른 시리즈에서 이어지겠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매니저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가 가방을 'office'에 둘 테니 나중에 친구나 본인이 와서 최대한 빨리 가져가라고 했다. '아 됐다.' 나는 좋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정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더니 매니저가 잠시만 기다리라며 저 비행기가 보이는 창가에 서서 어딘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5분, 10분, 15분... 이 흐르는 동안 매니저는 웃고 떠들기만 했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씩씩거리는 마음으로 통화를 엿듣기 위해 근처 의자로 옮겼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통화가 나를 비웃고 욕하는 내용이었단 걸. [자세한 대화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baggage', 'check-in', 'funny', 'crazy', 'can't understand her', 'weird', 그리고 계속되는 웃음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총 25분에 걸친 전화를 끊자마자 매니저는 나에게 와서 이번에는 우리가 그냥 실어줄 테니, 올 때는 꼭 $100를 내라고 했다.


또다시, 응? 나는 친구가 가방을 가져가기로 했다며, office에 놔준다고 하지 않았냐, 나는 그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which office?' 라며 깔깔 웃다가 말을 이어갔다. 공항 사무실에서 왜 네 개인 가방을 책임져주고 맡아줘야 하냐며, 지금 baggage claim 벨트에 '던져놓을 테니 (throw it on the belt)’ 최대한 빨리 와서 가져가라고 하라고 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100를 내기 싫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돈을 낼 필요가 없는 곳에 돈을 강제로 내야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에게 공짜를 받기도 싫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그 즉시 보딩이 시작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캐리어를 무료로 체크인으로 보내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미국에서 서비스를 경험할 때마다 나는 고전하고 있다. 이런 갈등은 언제 어디에서나 소통의 부재나 잘못된 정보, 또는 오해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하고 있는 갈등은 실제적으로 잘못된 정보로 인한(factual) 한 갈등에 더해 태도(attitude) 문제까지 더해지는 양상이다. 즉, 사측의 잘못된 정보나 오류로 발생한 것들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서비스 비용은 전부 다 받는 문화. 그런 문화를 양산하는 서비스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든 서비스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서비스 정보가 잘못되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서비스 비용을 깎아주거나 환급해주는 문화가 있는데, 여기는 아무리 사측에 책임이 있어도 결국 서비스를 받았다면 개인이 원래 서비스에 책정된 돈을 내야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이번 델타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연예인 혜리가 겪은 일등석 -> 이코노미석 '강등' 사례와 뒤늦은 환불 사례도 같은 예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미국에서 서비스에 대한 사측 책임과 개인 책임의 경계는 어디이며, 어떻게 설정되는걸까? 그 책임의 경계와 해석에 담긴 사회문화적,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미국에 온 후 일년 간 겪었던 델타 사건과 비슷한 양상의 사건들 (첫 아파트 입주 거부, 토요타 자동차 바퀴 교체 지불 책임에 대한 갈등, 아파트 임대 서비스 등)이 머릿속에서 연결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본 미국이라는 사회는 내가 자라고 공부해온 한국의 서비스 시스템과 문화와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나의 직관이 어떤 실제 차이에서 오는지 구체화해보고 싶었다. 내가 보고 겪는 것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던져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찬 결심은 참으로 다이나믹한 나의 미국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주: 인종이나 성별로 인한 선입견을 방지하고자 일부러 글에서 인종을 밝히지 않았는데, 추후 미국 서비스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이해를 돕고자 인종과 성별 정보를 이 주에 밝힘. 체크인 데스크 직원과 게이트 데스크 매니저는 흑인 중년 여성임.


*참고: 항공사(특히 미국 항공사)들이 수하물 가방 허용 개수를 낮추고 (2개 -> 1개) 추가 수하물 비용을 청구하는 정책은 항공사에게 막대한 수입을 가져다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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