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5

오직 선의로만 가득했던 말의 날.

by 서행하



2019년 어느 날. 다른 K.


내가 많이 존경하고 좋아하던, 스승처럼 모시고 싶었던 분이었다.

업계 선배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오래 붙잡고 싶었던 고마운 인연이기도 했던 다른 K.

내가 각고의 노력 끝에 회사에 합격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건투를 빌어줬었다.

그때 이 분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그분 나름대로 나를 향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해준 덕담이었겠으나, 결국은 나에게 폭력이 되어버린 그 말.


거기 사람들, 진짜 좋은 사람들이에요.


이 말은 곧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가 되었고, 직접 나를 때린 그 사람들의 말보다 더 큰 돌덩이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그분에게는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아니었다.






2020년 어느 날. Y.


친구와 통화를 하다 자연스레 사회생활에 대한 넋두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 힘들어.


그때는 "나도 알아."라는 말로 애써 넘겼지만, 이 말이 그렇게 아프게 들릴 수가 없었다.






2020년, 2021년 어느 날.


니가 원인제공을 했으니 그 사람들이 그러지.


너한테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너는 주위 사람들에게 너만 갖는 상처 말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니

왜 너만 좋으려고 하고 너만 지키려고 해? 타인의 마음은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서 듣는 말은 그 타격감이 확실히 다르다.

퇴사하고 그쪽과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그곳에서의 일은 나를 찌르는 칼이 되어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가끔씩 가족 또는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사소한 포인트로 감정이 틀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 발단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그곳에서의 일을 소환당하며 "네가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랬지." 이런 류의 말을 들어야 했다.

퇴사 이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참 극단적인 생각 많이 했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내 자아가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들을 감당하면서 참 많이 떨었고, 많이 울었고, 나를 많이도 때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위의 당사자들이 알게 된다면,

상처받을 것이다. 서운할 것이다.

이런 내가 미울 것이다.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상태였다.

내 의지로 나를 어찌할 수조차 없는.

선의를 선의로 받을 수도 없고, 타인의 말에 담긴 깊은 의미를 톺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소모되어 버린, 그런 상태.



미안합니다.

내가 하루빨리 과거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말들이라는 거 너무 잘 알아요.

하지만 그 당시의 난 그럴 수 없었어요.

날 위해준 당신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합니다.

정말 많이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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