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한동안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에 흠뻑 빠져 계셨다.
모든 회차를 그냥 정주행도 아니고 '본방사수'를 하셨을 정도였다.
그 드라마를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그래서 호기심에 나도 몇 차례 엄마를 따라 드라마를 봤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게 대략 무엇인 지는 알 것 같았다.
극 중 미래 미지 자매의 상황이 아-주 약간 내 상황과 비슷했다. 미래 미지 둘 모두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장 심각했을 때의 모습을 딱 절반으로 갈라서 미래 미지에게 나눈 듯한 모습.
하지만 미지의 서울은 드라마답게 상황이 훨씬 극단적이었다.
'저 드라마 속 주인공이 겪은 일에 비하면 내가 겪은 건 어린애들 장난 같은 사내 따돌림 정도에 불과하군..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발버둥 치고 있는데.'
자연스레 생각이 이런 방향으로 흘렀다.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무의식을 미처 끌어당겨 볼 겨를이 없었다.
나를 다시 과거의 시간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불편했다. 해피엔딩인데도 불편했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가 끝난 후 어느 날, 엄마와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잠시 나눴다.
나는 저 드라마 편히 보기 어려워.
작가의 의도도 잘 알겠고, 그래서 고맙고, 해피엔딩이라 좋긴 한데.. 저 미래 미지에겐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네. 얼굴이 박보영이라서 그런가.
현실에선 아무것도 해소되지 못한 채 혼자 고통받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텐데 말야.
드라마를 통해 위로? 그것도 좋아. 좋은데, 나는 오히려 저걸 보고 나서 내 현실과 비교하게 되면 더 고통스러워질 거 같아.
내 말에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드라마 속에서 박보영을 도와준 사람들 같은 사람이 너한텐 없다고?
널 돕는 사람이 왜 없어!
엄마 아빠 동생이 네 곁에 있고,
슬아, 초롱이, 미아 같은 친구들이 네 곁에 있고,
그때 너 모르게 도와줬다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어떻게 그 사람들을 다 잊어버리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
아뿔싸...
맞다.
나를 북돋아 주고 응원해 준 사람들.. 내 뒤에서 나 모르게 도와주려고 노력해 준 사람들..
있었다.
일전에 지인에게서 들었던 아픈 말이 떠올랐다.
왜 자신만 좋으려고 하고 왜 너만 지키려고 해?
내 감정만 생각하느라 날 도와준 사람들을 깡그리 잊어버린.
'상처받은 나'에 완벽히 매몰되어 교묘하게 모양만 바꾼 상처를 내 주변인들에게 주고 있었을 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부단히 애쓰면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은 철저히 외면한 나.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