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장 간 틈을 타 사촌동생을 집에 초대했다. 손님인 동생이 하루 자는 동안 아침 일찍부터 나는 냉장고에서 퀴퀴한 냄새를 맡았고, '오늘은 너다!'싶어 냉장고에 있는 온갖 음식들을 다 꺼내 청소를 시작했다.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깬 동생은 '언니 아직도 여전하구나.'라며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전부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나를 이해하지 못한 동생은, 결혼을 해도 '기질'은 어딜 가지 않는다나...
매번 남편과의 논쟁 중 하나였던 건 '꼭 뭘 해야 되는가?'였다. 쉰다는 의미에 대해서 서로 해석하는 바가 달랐다. 남편은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던가 휴대폰을 끄적이거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뇌를 정지시키는 것이라 말했고,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대청소를 하거나 새로운 곳에 가보거나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 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빨빨거리며 다니고. 몸을 이래저래 쓰다 보니 연초부터 감기와 장염으로 깨나 고생했다.
어제 친구랑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요즘 같은 난임이 많은 시대에 한방에 임신이 된 친구는 육아도 거뜬히 해내는 모습이었다. 이런 행복은 또 처음이라는 친구가 부럽기도 해서 임신의 비결을 물어보니 '쉴 때는 정말 나태하게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태함'을 마치 죄악처럼 여겼던 나에게 그 말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태하게 쉬고 나면 그 찝찝함을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 말이 와닿았던 건, 그 누구도 아닌 30년 가까이 나를 옆에서 봐온 친구가 해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내 삶의 키워드를 '안정'과 '축적'으로 선정을 했는데, 그 이유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나의 인사이트나 능력을 보여주고 발산하는 것만이 성공의 지표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여러 가지 사건들 속에서 생각의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쉴 때만큼은 모든 걸 다 off로 전환해 나태하게 누워만 있어도 된다는 느슨함도 필요하다. 물론 익숙해지기 위해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매번 유튜브로 갓생 브이로그, 하루 루틴을 잘 지키는 방법 등과 같은 콘텐츠만 보고 있었는데, 적어도 주말만큼은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 정말 나태하게 살고 싶다. 주변 사람들의 말로는 나태함은 금방 익숙해진다고 하니 크게 어렵진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