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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r 21. 2023

동네 한 바퀴

어딜 가나 요즘 얼굴 표정이 많이 좋아졌단 소리를 듣는다. 이사를 기점으로 나의 삶의 루틴과 태도 모든 면에서 변화가 크게 생겼기 때문이다. 잠자리가 편해져 통잠을 자기 시작하다보니 철석같이 지키던 새벽기상 다소 힘들어지긴 했지만,  방해받지 않고 온안하게 잠잘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거기서 빚어지는 내면의 평화는 요즘 나의 얼굴 표정에서 드러난다. 양자물리학, 끌어당김의 법칙 등 추상적인 말들을 맹신하진 않지만 그래도 요즘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마인드 세팅을 조금 달리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얼굴에 웃음이 많아진 것, 그리고 불평불만이 줄어든 것. 이 두 가지로 파생되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금전적인 흐름까지 좋아졌다.(예를 들면 투자했던 코인이 예상치 못하게 오른다거나, 새로운 일들이 주어진다거나...) 


 보름 정도 쉬는 날 없이 부지런히 달리고 모처럼 맞이한 주말, 친구와 함께 동네 마실 겸 브런치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근처 선릉과 정릉 일대를 둘러보며 오래간만에 도심의 한적함을 느꼈다. 사실 역 이름이 선릉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이 선릉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선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동네 맛집을 찾으려 네이버 지도를 켰다가 생각보다 큰 규모의 녹색지대가 보이길래, 조만간 가봐야지 했던 장소를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가게 됐다. 


 서울은 참 이상한 곳이다. 높디높은 빌딩들 틈에 숨고를 수 있는 공간들이 맥락 없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역삼동 한가운데 위치한 국기원이나, 코엑스 바로 옆에 있는 봉은사. 그리고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들 뒤편에 떡하니 지키고 있는 선릉과 정릉. 빠르게 변해가는 도심의 모습을 잘 보여주면서도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강조하는 걸 보면, 그래도 아직은 강남이라는 지역에 소소한 낭만은 남아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선릉과 정릉 일대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와 우리 아빠가 좋아하겠다.' '나중에 데이트할 때 꼭 와봐야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보다 먼저 들었던 감정은  제주에 있을 때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찾던 노꼬메오름과 같은 공간을 찾았다는 설렘이었다. 


  우거진 나무숲은 아니지만 도심에서 흙길을 걷는다는 건 생소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흙길을 밟을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지나가는 길에 동네 주민분들께서 작게 피어난 꽃을 요리조리 보더니 ' 작년엔 진한 보라색이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색깔이 옅네'라고 한마디 툭 던지며 지나가셨다. 계절이 돌고 돌아 결국은 또다시 봄으로 왔지만, 결코 작년과는 또 다른 봄이 시작되었다.


 3월은 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그만큼의 기대를 하게 된다.  화이트데이부터 시작해 벚꽃 축제, 그리고  내 생일까지 이어지다 보니 어릴 적부터 봄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그만큼 실망만 했던 기억이 많아 어느샌가부터 봄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 마음이 가장 번잡해져서, 20대 후반부터는 벚꽃이 언제 절정인지만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매 해 벚꽃이 언제가 가장 절정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외칠 수는 있지만,  그 외의 기억들은 모두 블러처리를 했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냥 내 마음이 이전보다 조금 더 뚜렷해져서일까. 강렬한 기억은 없더라도 소소하게 모든 것들을 다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소소한 기억의 첫 장에는 아마 이 날의 선릉의 산책이 실릴 것이다.


모든 것들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고전적인 말을 드디어 깨닫게 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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