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퍼즐 맞추기, 가족이름 쓰기, 덧셈공부 했어요. 가족들 이름은 꾸준히 해와서 잘 기억하고 쓰는데, 덧셈은 좀 등한시했더니 실력이 많이 떨어져서 속상하네요ㅠ. 그래서 끊임없이 두뇌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엄마 좋아하시는 나훈아, 이미자 노래 감상 중이십니다.
점심으로 집에 있는 재료로 김밥 싸 먹었어요. 마침 올케가 밑반찬으로 해온 우엉도 있었어요. 단무지가 없어서 석박지로 했는데 더 맛있지 모예요. 시금치가 빠져 색은 안 예뻐도 맛은 최고였어요.
평온한 오후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24. 8.13 tue
오늘 아침 엄마 돌보고 있는 동생이 친구들과 휴가를 떠났습니다. 이틀, 길면 3일이 될 수도 있겠다네요. 전 어제 오후부터 동생네 와있습니다.
노인병원에 계시는 엄마가 안쓰러워 십여 년 전부터 기꺼이 삶의 대부분을 내놓으며 엄마 모시기를 자처한 동생입니다. 짜증 한 번 안 내고 항상 기쁜 마음으로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동생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가 되었어요. 어릴 때 흘러내리는 머리를 귀에 꽂아주시곤 하던 엄마께 이젠 제가 엄마의 희고 고운 머리를 귀에 꽂아주곤 합니다.
이 더위도 빠르게 물러나고 선선한 가을이 오겠지요? 나이 쉰이 넘어서면서 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후회 없는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할 때입니다. 저와 인연이 된 히팸분들 모두 행복한 마무리를 준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사진은 어제 갔던 비취클럽 정원의 한 곳입니다.
24. 8.8 thu
오늘도 도서관에 나와 있습니다. 헷세의 결혼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마침 비도 내리네요. 헷세를 위해 마리아가 심사숙고해서 찾은 가이엔호펜 호수가의 신혼집 풍경과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이어폰으로 작게 들려오는 음악이 더욱 평안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헷세의 집 2층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입니다. 헷세는 독일 가이엔호펜의 호수가를 산책하며 호수 건너에 보이는 스위스를 동경한 듯합니다.
입추가 지나니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합니다.
히팸님들도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24.7.31 wed
오늘 아침 한 뉴스프로에서 책 소개를 했다. 안온 작가의 <일인칭 가난;그러나 일 인분이 아닌>이다. 그는 27세의 젊은 작가로서 자신의 가난했던 삶과 현실을 일인칭 시점에서 세부적으로 묘사해 낸다.
그중 한 대목이다.
'원하는 적 없는 가짜 동정이, 모르는 손길과 함께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했다. 트럭 한 대가 서더니 남자 두 명과 박근혜가 내렸다. 그는 덥석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밝게 자라서 고맙다고 했다. 이후로도 종종 자신을 정치하는 아저씨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내 머리를 함부로 쓰다듬고는 했다. 지금도 나는 재해지역이나 쪽방촌에서 생수며 연탄 반찬등을 나르는 정치인들을 보면 끔찍하다. 새것이라서 유난히 빨간 목장갑과 일부러 묻힌 듯 재가 거뭇거뭇한 기름진 얼굴들. 그들이 동정마저 전시하는 동안 가난한 얘들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가난을 동정하거나 파는 정치인들.
제발 정치인들이 더 이상 이런 눈살 찌푸려지는 쇼를 그만 두길 바란다. 잊히지 않는 상처만 남길뿐이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하늘의 저 동화 같은 구름은 누구나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겠지요?
24.7.30 tue
논란이 많은 감독이라 우디앨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두 영화를 좋아한다. 우디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와 레이니 데이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두 영화는 제목도 비슷 하지만 스토리 설정도 비슷하다. 서로 결이 다른 두 연인이 결국 헤어지게 되고 결이 맞는 다른 이성과 이어지며 끝이 난다. 두 영화 모두 남자 주인공이 비 내리고 흐린 파리와 뉴욕을 좋아하는데 상대는 그 반대이다.
'너랑 난 너무 딴판이잖아.
넌 햇빛아래서 피어나고
난 회색하늘 아래서 힘이 나고..'
'찻길의 으르렁대는 굉음,
내 외로운 밤의 적막'
개츠비(티모시)가 콜포터의 'Night and Day' 노래가사를 읊는데,
나 알아, 셰익스피어 맞지? 하고 봉창 두드리는 그녀다.
영화 <레이니데이 인 뉴욕>은 샬라메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와 노래, 비 내리는 뉴욕 풍경이 좋아서 가끔씩 찾아보는 영화이다.
24. 7.19 fri
오래된 노트에 끼워둔 빛바랜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찢어 놓은 쪽지 오른쪽 상부에는 1991, 년도가 찍혀있고, 메모해 둔 글이 있었다. 그 해는 내가 27살 때이다. 그때 회사 책장에서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꺼내어 읽었는데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후로 세 번은 더 읽었다. 프랑스 파리에 우울하지만 깊은 매력을 느끼게 한 책이기도 하다.
"후회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익한 것이오. 되찾을 수 있는 것이란 하나도 없오. 물론 보상할 수도 없오. 인생은, 우리를 완전한 것으로 만들겠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말이오. 완전한 인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박물관의 표본감이지."
주인공 라빅이 주앙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이후 인생을 살아오면서 꾸준히 내게 위안을 주고 있는 말이다. 어차피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
'괜찮아'라는 말처럼 쉽게 위안을 얻는 말도 없을 것이다.
24.7.6 sat
오늘은 동생이 하루 쉬는 날, 친구들 만나러 서울에 갔어요. 동생 대신 제가 엄마를 돌보고 있습니다.
울 엄마(87, 10년 이상 경증 치매 앓고 계심) 최애템들과 일과를 소개합니다. 아침에 눈뜨면 반드시 목걸이와 반지부터 스스로 챙겨 끼십니다. 목욕시키고(1일 1목욕) 아침식사 후엔 똑똑이를 누르시며 노십니다. 손주가 사다준 똑똑이가 4개나 되는데 골고루 다 가지고 노십니다. 뺏을 때까지 멈추는 법이 없어요. 그다음 화투로 값을 카운팅 하시는 것도 뺏을 때까지 안 멈추십니다. 퍼즐 맞추기랑 한글 쓰기, 덧셈은 하루 공부시간입니다. 저 많은 퍼즐(10판)을 눈 깜짝할 새에 클리어해 놓으십니다. 가족들 이름 쓰기랑 간단한 수 샘을 꾸준히 시키고 있는데, 덕분에 손주들, 며느리, 사위 이름까지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시는데 단 한 번도 소화불량 같은 건 모르십니다. 참 최애템에 사탕이 빠졌네요. 꾸준히 찾으시는데 당때문에 무설탕 애니타임으로 주로 챙겨 드립니다. 운동은 부축해서 화장실 모셔갔다가 나올 때마다 겨우 거실 반바퀴 부축해서 운동시키고 있습니다. 엄마는 얌전히 휠체어에 앉아만 계시기 때문에 30분 정도는 혼자 두고 볼일 보러 나가기도 하는데 휴대폰은 그때 요긴하게 쓰입니다. 엄마가 저희에게 걸기도 하시고 저희가 걸면 잘 받으십니다.
ㅎㅎ 이상 사랑스러운 저희 엄마의 일상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히로인스'라는 운동앱에 올린 일기글을 추려서 5~7편씩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기에서 지칭하는 히팸은 히로인스 가족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