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가 그랬던 것처럼 '히로인스'도 어느 날 불현듯 내게 찾아왔다. '히로인스'는 매일 운동하고 운동일기를 쓰면, 동참하는 히로인들에게 일기가 공개되고 댓글로 서로 응원을 주고받으며 아주 작은 보상을 받게 되는 운동앱이다.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있던 내게 매일 짧게라도 글을 써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SNS를 부담스러워하는 난 잠깐 망설이다가 반 강제로라도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일단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 쓰기는 오늘까지 총 188회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어느새 6개월의 세월이 넘었다. 히로인스의 응원 덕에 운동도 꾸준히 하게 되고 짧게나마 일기도 매일 쓰게 되어 '히로인스'는 내 삶에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고 있다. 이 운동앱 이용자들은 대부분 두 어 줄 남짓 짧게 흔적만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의도가 응원차 쓰는 운동일기라서 길게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비교적 긴 내 일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바빠서 또는 귀찮아서 읽어 보지도 않고 응원 메시지만 짧게 남기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에 맞게 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니 아무 문제없다. 다소 긴 내 일기를 부담스러워만 안 했음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물론 따뜻하고 관심 있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 그분들에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댓글을 통해 피드백도 되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오랜 시간 안부를 주고받다 보니 친근한 정도 든다.
나이로 보면 어느덧 부정할 수 없는 초로의 삶에 접어들었다. 초라한 글이지만 일기를 통해 예순을 바라보는 여인의 일상을 돌아다본다. 그간 써온 일기가 너무 많아 5~7개씩 나눠올리고자 한다.
일기는 그날 기분에 따라 일기형식과 히팸(H.fam)분들께 올리는 형식이 섞여있다. 일기 끝에 그날 촬영한 사진 한 장을 같이 올린다(선택).
24. 9.6 fri
군에 있는 아들이 오늘 체력검사날이라 휴무라고 저녁 산책하러 나왔다며 전화가 왔다.
난 글을 쓰던 중이었는데,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 통화 중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마치 같이 산책하듯 근처 공원을 돌며 긴 통화를 했다.
아이가 재수할 때 매일 6시 기상해서 같이 아침 산책을 꾸준히 했었다.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그 후로도 아이가 엄마와 산책하는 걸 즐긴다.
이렇게 오늘은 기대에 없었던 아들과의 산책 선물을 받았다. 사랑한다 강현아~
통영 벽화마을에서 가족여행 때 2019.11(고1)
24. 9.3 tue
혈혈단신이셨던 엄마와 성씨가 같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친오빠처럼 가깝게 지내던 오빠와 언니(부인)가 추석인사를 오셨다. 매년 두 어번씩 아버지 묘에 인사차 대부도에 들렀다가 엄마 뵈러 오시곤 한다. 엄마처럼 부모, 형제도 없었던 오빠는 울 엄마가 친동생처럼 여겨 결혼도 시키고 동네 사람들 모두 불러 집에서 소불고기로 잔치도 치러줬다. 그런 인연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친 가족처럼 서로 챙기는데, 웬만한 가족보다도 진심이다. 오빠와 언니 두 분의 가식 없는 선한 웃음이 언제나 참 따뜻하다.
엄마는 또 오갈 데 없는 만삭의 여자를 집에 들여 아기를 손수 받아주고 아기와 함께 집에서 살게 하며 집안일을 거들라고 일자리도 주셨다. 그 아기가 4살 때까지 우리 집에서 가족으로 함께 지냈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베풀며 살아오신 엄마의 삶을 존경한다. 우리 엄마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24. 9.1 sun
이른 아침, 남편보다 일찍 깨어나 조용히 아들방으로와 침대에 기대어 읽고 있던 헤세 ×정여울(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을 읽었다.
Brian Crain의 At First Light의 조용한 선율이 차분한 아침 풍경과 잘 어울려 1곡 반복으로 계속 틀어놓고 읽었다.
내가 헤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헤세와 비슷한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오늘 읽다가 공감되는 한 대목을 가져왔다.
"우리가 이 세상에 적응하는 일, 즉 사회화만으로도 충분한 동물이라면, 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화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굳이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참나'를 찾기 위해 영혼을 산산조각 내어 다시 처음부터 창조하는 듯한 참담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결별한 아픔을 딛고 싱클레어는 마침내 데미안을 닮은 존재, 나아가 데미안을 뛰어넘는 지혜로운 치유자가 된다. <데미안> 이후 헤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공통으로 추구한 삶의 목표는 '개성화'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끝없는 탐구, 세상이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싸움, 그것이 개성화다. 사회화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이, 진정한 자기 자신의 발견과 성장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개성화다."
아들 침대에 기대어 바라보는 창밖 아침풍경이다.
24. 8. 29 thu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2016년, 8년째다. 밝히기도 부끄러울 만큼 최근 들어 활동은 미미하다. 그저 글쓰기를 좋아해서 호기심에 응모해 봤는데 운 좋게 선정되어 브런치 작가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브런치스토리'는 진짜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글쓰기 플랫폼이다. 그동안 썼던 글이나 새 작품을 써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거기서 당선되면 책 출판도 도와준다. 그러면 진짜 작가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에 오른 브런치 작가들의 책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한 일러스트 작가의 그림과 글이 좋아서 서로 응원해 오던 작가가 있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었는데 장르가 바뀌어 소설을 써서 올렸다. 무척 반가웠다. 난 꿈도 못 꿀 일을 해내는 사람들, 정말 너무 멋지다. 소설이 흡입력도 좋고 필력도 더욱 완벽해졌다. 그 간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의 활동 기대하며 힘껏 응원한다.
오늘도 하늘이 가을동화처럼 예쁘다.
소개한 일러스트작가의 그림이다.
24. 8. 27 tue
프랑스 영화 두 편을 봤다. 레아 세이두의 <어느 멋진 아침>이랑 이자벨 위페르의 <다가오는 것들>이다. 두 편 모두 가족영화이면서 로맨스도 있다. 둘 다 재미있었지만 그중 <다가오는 것들>이 더 느낌이 좋았다.
우디 거스리의 포크송(ship in the sky)도 좋았고, 검은 고양이(green eyes)도 좋았고, 프랑스 농가 풍경도 좋았다. 나탈리(이자벨)가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낭독한 <팡세>도 염세적이었지만 좋았다. 나탈리가 잠에서 깨어 우는 손녀딸을 안고 불러주는 노래도 좋았고, 엔딩곡으로 흐르는 unchained melody도 좋았다. 많은 것이 좋았던 영화였다.
파스칼의 '팡세(생각)'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로 잘 알려진 책이다.
이런 보잘것없는 일기를 브런치에 올리는 게 부끄럽고 망설여졌지만 제겐 소중한 기록이라 그냥 사라지는 게 아쉬워 연재하기로 용기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