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룸"
어느 날 내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엄마 배속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엄마 배에서 '룸Room'으로 던저져 눈을 떴을 때 엄만 내게 "헬로 잭~" 하고 인사를 했어요.
난 이제 5살이에요.
매일 아침, 난 내 친구들에게 인사를 해요.
"굿모닝 램프?"
"굿모닝 화초?"
"굿모닝 러그?"
"굿모닝 옷장?"
"굿모닝 티비?"...
세상엔 '룸'이 있고 룸 밖엔 우주가 있고, 티비 별나라와 하늘나라가 있어요.
화분의 화초는 진짜고 나무는 가짜,
거미랑 내 피를 빠는 모기는 진짜고 다람쥐와 강아지는 티비에만 나와요.
괴물은 너무 커서 가짜고 바다도 가짜예요.
티비속의 사람들은 평평하게 색칠한 가짜지만 나랑 엄마는 진짜예요.
근데 닉은.. 잘 모르겠어요. 반만 진짜일까?
어느 날 진짜 쥐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엄마가 쫓아버렸어요. 살아있는 진짜 내 친구를..
엄만 쥐는 뒤뜰에서 잘 살거라 말했어요. 난 뒤뜰이 뭐냐고 물었어요.
"쥐는 티비속 정원에만 살지 않아?"
닉이 올 때는 난 옷장 안에만 있어야 했어요. 그것이 엄마와 나의 규칙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살며시 옷장 밖으로 나왔어요. 닉은 엄마 옆에서 자고 있다가 눈을 떠 나를 바라보며 '오 이 녀석' 했어요. 그 소리에 엄마가 깨서 날 숨기며 소리를 질러 닉이 조용히 하라며 엄마 목을 졸랐어요.
규칙을 어긴 내가 잘못이었어요. 너무 무서웠고 엄마에게 미안했어요.
다음날 아침, 드래곤처럼 내 입에서 연기가 나왔어요. 엄마는 닉이 전기를 끊었대요.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어요. 엄만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쥐 얘기를 꺼냈어요.
"지금 그 쥐가 어딨는지 알아? 이 벽 반대편에 있어."
"어떤 반대편?"
"모든 벽은 두 면이 있어. 우린 벽 안쪽에 있고 쥐는 벽 바깥쪽에 있어."
"우주?"
"아니 세상! 우주보다 훨씬 가까워."
"?....."
"닉이 음식을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티비에 나오는 마술 아니야?"
"마술 같은 건 없어!
티비에 나오는 사람은 다 진짜 사람이고 진짜 물건이야"
"거짓말! 엄마가 말하는 그 진짜들은 다 어딨는데?"
"세상에 다 있어. 너가 어려서 엄마가 거짓말을 한 거야. 이제 진짜를 말해줄게.
넌 5살이잖아. 5살이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
"나 4살로 돌아갈래.."
"엘리스가 어쩌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니?"
"구멍으로 깊이 깊이 빠졌어"
"엄마도 옛날엔 룸 밖에서 살았었어.
잔디와 해먹이 있는 집에서 엄마 아빠랑 같이.."
"티비 속의 집?"
"아니 세상에 있는 진짜 집!"
"엄마가 17살 때 길을 걷고 있었는데 닉이 개가 아프다고 속여서 엄마를 창고에 가뒀어. 그 창고가 여기 룸이야! 그리고 7년을 살았어!"
"듣기싫어! 다른 얘기해!"
"아니, 들어야 해!
잭, 세상은 정말 커. 얼마나 큰지 상상도 못 할걸?"
"엄마가 말하는 진짜 세상 같은 건 없어!!"
"그래, 알았다.."
그날 이후, 엄마는 울다가 며칠동안 누워만 있었어요.
난 닉이 생일선물로 준 자동차를 부숴서 던져 버렸어요.
"거북이는 진짜야?"
"그래 진짜지.. 엄마도 키웠는걸?"
"악어랑 상어는?"
"다 진짜야!"
"도라도라는그냥 티비 그림이지"
"잘 아네"
"닉이 오면 내가 무찔러줄 거야!"
엄마는 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닉을 속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난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나 엄마는 너무 간절했고, 난 난..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그 무서운 시체놀이가 시작되어 버렸어요. 갑자기 닉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에요.
내 몸은 러그에 돌돌 말린 체 닉에 의해 룸 밖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룸 밖에는 엄마가 말한 세상이 진짜 있었어요.
나무도 집도 차들도 사람들도 개도 모두 진짜였어요.
그리고 하늘은 룸에서 구멍 창으로 봤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넓었어요.
시체놀이는 진짜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닉에게 들켜버려서.. 난 필사적으로 소리쳤어요.
"도와줘요!!"
엄마를 다시 만나고 엄마에게 꼭 안겨 말했어요.
"엄마, 우리 이제 자도 돼?"
"그럼, 잘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꺼야."
"아니, 우리 침대.. 룸에.."
엄마와 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엄마는 룸에서 보다 더 웃지를 않았어요. 엄만 죽으려고 약까지 먹었어요. 결국 병원에 입원하셨고 나도 이 세상이 지루해졌어요.
세상엔 볼게 너무 많아요. 근데 너무 넓게 펼쳐 있어서 다 못 보겠어요.
모든 사람들은 말해요.
"빨리빨리"
"어서 합시다"
"속도를 내야지"
"이것부터 끝냅시다"
그래서 엄마도 하늘나라에 빨리 가고 싶어 했나 봐요.
난 어쩌라고! 바보엄마
난 가끔 룸이 그리워요.
내가 살기에 좁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엄마가 늘 함께 있었잖아요.
난 힘샘인 내 긴 머리를 잘라 엄마에게 힘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엄마는 집에 돌아왔어요.
내 머리카락을 받고 '이제 낫겠구나' 했대요.
"미안해,잭"
"괜찮아, 다신 그러지마"
"엄만 좋은 엄마가 아닌가 봐"
"그래도 엄마잖아!"
"맞아.. 난 엄마야"
난 4살 땐 몰랐던 이 세상에서,
이제 엄마와 영원히 영원히 살려고 해요.
죽을 때까지요.
가끔은 무서운데
괜찮아요.
늘 엄마랑 함께니까.
"룸에 가봐도 돼?"
"잭"
"그냥.. 가보고 싶어서"
엄마는 경찰 아줌마랑 함께 날 룸에 데려갔어요.
룸은 전보다 더 작아 보였어요.
"굿바이 화초"
"굿바이 의자 1번"
"굿바이 의자 2번"
"굿바이 테이블"
"굿바이 옷장아"..
천장에 있는 구멍 창을 한동안 올려다 보았어요.
"굿바이.. 스카이라이트"
"엄마도 인사해!"
룸과 작별하는 날 하늘나라에서는 진짜 눈을 내려 주었어요.
"굿바이.. 룸"
영화 <룸>은, 2008년 오스트리아의 충격적인 밀실 감금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엠마 도노휴(아일랜드)의 소설 <Room>을 영화(2016년)로 만든 것이다.
난 이 영화를 보고 엉뚱하게도 과연 5살 잭은 어느 세상에서 더 행복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한 사건(감금)만 아니었다면 엄마와의 작은 세상이 더 좋았는지도.. 그래서 잭은 룸이 그리웠던 것일테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잭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대로 옮기고자 노력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