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노동·반복의 미학을 다루는 작가들(4)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Félix González-Torres

by 서히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Félix González-Torres (1957–1996)

쿠바 출신의 개념미술가

관계와 돌봄의 반복을 통해 작품의 존속 조건을 드러낸 현대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은
언제나 완전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은 줄어들고, 사라지고, 비워지며,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다시 유지된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존속의 조건이다.


작품은 돌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펠릭스의 대표작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에서
관객은 사탕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다.
사탕은 점점 줄어들고,
작품은 서서히 소멸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사라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 공간의 관리자는
사탕을 다시 채울 수 있고,
작품은 또다시 시작된다.

이 반복은 말한다.

이 작품은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a-man-taking-a-piece-of-candy-from-the-art-piece-2013-mark6mauno-1689372888900_1400x.jpeg Félix González-Torres,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관객의 참여로 작품이 줄어들고 다시 보충되며, 돌봄과 유지의 반복이 작품의 존속 조건이 되는 작업



유지라는 노동, 관계라는 구조

펠릭스의 작업은
사랑, 애도, 상실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들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구조를 만든다.

누군가가 가져가고,

누군가가 채우고,

누군가가 시간을 맞추고, 누군가가 상태를 지켜본다

이 모든 과정은 보이지 않는 작은 노동의 연쇄다.

그의 작품은 이 노동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의 핵심으로 끌어올린다.


완성되지 않음이 작품의 윤리가 될 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에게 완성은 목표가 아니다.

작품은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그 불완전함은 실패가 아니라
윤리적 선택이다.

그는 묻는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시간과 관계가 어긋나는 순간들

*Untitled (Perfect Lovers)*에서
두 개의 시계는
처음에는 같은 시간을 가리키지만,
언젠가 어긋난다.

이 작품은
이별이나 죽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어긋남이 필연이라는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torres-gonzalez-perfect-lovers_orig.jpg Untitled (Perfect Lovers), 1987–1990 두 개의 시계, 가변 설치

처음에는 같은 시간을 가리키지만, 결국 어긋나고 멈추게 되는 두 개의 시계. 사랑과 돌봄이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 어긋남을 지연시키는 지속의 노동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정리하며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예술은 누군가의 돌봄 없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작품을 넘어 삶을 향한다.

그리고 이 질문이야말로
작은 노동이
왜 예술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가장 조용하게 증명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몸·노동·반복의 미학을 다루는 작가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