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매거진의 연재를 통해
돌봄 노동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어디에서 사라졌고,
어떻게 다시 가시화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고 싶었을 뿐이다.
역사는 돌봄을 사적인 영역으로 밀어냈고,
경제는 그것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분류했으며,
정치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침묵 속에 오래 방치해 왔다.
예술은 그 거대한 틈새에서
언어 대신
형태와 구조로 질문을 남겨왔다.
미얼 라더만 유클리스는
유지와 관리의 반복을 예술의 층위로 끌어올렸고,
도리스 살세도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의 흔적을
공간 그 자체에 새겼다.
온 카와라는
그저 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만을
침묵으로 증명했으며,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사라짐을 전제로 한 사랑과 돌봄의 구조를 놓았다.
이 작가들은 돌봄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돌봄이 작동하는 조건을 끝까지 드러냈을 뿐이다.
이 연재를 마치며
나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기보다,
하나의 위치에 도착했다는 감각을 느낀다.
돌봄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이며,
희생이 아니라 반복이고,
설명이 아니라
지속의 방식이라는 그 자리.
이제 나는
이 질문을 글로만 다루지 않으려 한다.
나의 작업 안에서,
재료와 형태로,
때로는 중단과 지연과 잔여의 구조로서
이 질문을 계속 통과해 나갈 것이다.
이 연재는 여기서 멈추지만,
이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