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밀도

-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운 시간들

by 서히


퇴사한 다음 날 첫 아침,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몸이 먼저 깼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시간에 일어났던 몸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습관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낯설었다.

회사에 다닐 때의 공기는 좁고 단단해서

들이마시면 즉시 폐에 닿았는데,

지금의 공기는 너무 넓고 가벼워 어디에도 걸리지 않았다.

숨을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자주 숨이 막혔다.

아무도 나의 하루를 규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내가 유용한지 묻지 않았다.

통장에 숫자가 찍히지 않는 시간들만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쌓여 갔다.


밤마다 같은 꿈을 꾸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는 꿈.

꿈속의 나는 안도했다.

“그래도 여기선 숨 쉬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눈을 뜨면 나는 다시 이 낯선 공기 속에 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일 년, 또 일 년,

그리고 다시 일 년.

돈이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찾아왔다.

“돈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으면 나는 사라지는가.”


그 질문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느리게,

껍질처럼 굳어 있던 것들을 하나씩 벗겨낼 뿐이었다.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서 나는 발견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있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보상이 없어도

나는 매일 같은 질문 앞으로 기어이 돌아오고 있었다.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지만,

3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지난 스물두 해의 시간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떠나왔었다는 것을.

아무 이름도 붙이지 못했던 지난 3년은

그 거대한 세월을 떠나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통과의례였다.


어느 아침,

여느 때처럼 이불을 개다가

문득 숨이 깊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두려웠고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지만,

이제 공기는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아직 성공하지 않았고 어디에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막막한 공기 속에서도 나는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번은 진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셈이라는 것을.


올해의 끝자락,

12월의 마지막 월요일 아침.

이불을 개며 마주한 이 맑은 감각은,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선물 같은 확신이었다.

이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작가로서의 숨을 내뱉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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