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접히고, 소음에 펼쳐지는, 감정의 결

— 단단해지기를 포기한 마음에 대하여

by 서히


우리는 흔히 마음이 단단해지기를 갈망한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상처 입지 않는 견고한 성벽처럼
내 감정이 무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본 인간의 마음은
사실 단단한 덩어리라기보다,
찰나의 바람과 온도, 주변의 작은 소음에도
미세하게 떨리는 ‘얇은 막’에 가깝다.

이 막은 너무나 얇아서
때로는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찢어질 듯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정해 보이는 그 연약함이야말로
우리가 외부에 온전히 열려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찢긴 자리는 어느새 다시 덮이고,
흩어졌던 마음은 다시 이어진다.
부서져 버리는 딱딱한 유리와 달리,
이 얇은 막은 유연하게 자신을 복구하며 흐르는 생명력을 지녔다.

만약 마음이 단단한 덩어리였다면
세상은 그저 우리에게 부딪혀 튕겨 나갔을 것이다.
아무것도 흡수되지 않고,
아무것도 새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얇은 막이기에
세상의 미세한 변화는 우리 안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은 다시 감정이 되고, 생각이 되고, 말이 되어
결국 글이나 그림 같은 저마다의 무언가로 태어난다.

그래서 시시각각 반응하는 마음은
산만한 상태라기보다
계속해서 세계를 번역하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오늘의 허전함이 감사로 바뀌고,
누군가의 부재가 선물이 되며,
소음이 사유로 치환되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우리 안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적임 속의 고독과
홀로 있을 때의 허전함 사이를
파도처럼 오가는 감각은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감도(感度)가 살아 있다는 생생한 지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보다,
이렇게 접히고 펼쳐지는 마음의 결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깊은 존재의 상태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는 날엔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좋다.
단단해지기를 포기한 그 얇은 마음으로,
오늘도 당신은 당신에게 도착한 세계를
성실히 번역해내고 있으니.

미풍에도 가늘게 떨리며 반응하는 지금의 상태가
당신이 가장 깊고 풍부하게 살아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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