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없는 심연 앞에 머무는 법
예술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근력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이해하고,
너무 서둘러 언어로 세계를 정리한다.
말이 붙는 순간 사물은 안전해지지만,
동시에 납작해진다.
감정은 이유를 요구받고, 관계는 설명 가능한 서사로 환원된다.
그러나 삶의 많은 순간들은 그런 정리에 끝내 응답하지 않는다.
세상은 끊임없이 명확한 해설을 요구하지만,
예술가는 오히려 그 요구를 거부하며 이해를 뒤로 미룬다.
서둘러 마침표를 찍는 대신,
물음표와 쉼표 사이에 열려 있는 광활한 공간을 지켜낸다.
설명되지 않는 불안을 서둘러 해소하지 않고,
기꺼이 품은 채 머무는 일.
그 단단한 태도가 우리를 더 깊은 진실로 이끈다.
예술은 그 응답하지 않는 상태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태도다.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아직 단어가 되지 못한 감각을
그대로 눈앞에 펼쳐 둔다.
안다는 착각을 잠시 멈추고,
이해를 유예한 채
그 모호함의 심연 속에 머무는 일.
흔들리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것.
예술의 용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유지에 가깝다.
의미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 이전의 상태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이다.
나는 예술을 통해 삶을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말이 되지 않은 것들과 함께
무너지지 않고 서 있으려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