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들

— 존재라는 사소하고 위대한 감각

by 서히


우리는 왜 이토록 껍데기에 매달리며 안정을 찾으려 할까.

역할, 계획, 평가, 불안, 계산.
우리가 붙드는 걱정들은 대개 껍데기일 뿐이다.
언젠가는 결국 벗겨지고 사라질 것들.
기어이 벗겨지고 말 파편들이
마치 존재의 근거인 양 우리를 속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침,
영하 9도.
겨울의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차가운 바람은 이상하리만큼 상쾌했다.

설명도, 평가도, 계획도 없이
몸이 먼저 세계를 받아들이는 찰나.
차가운 공기가 옷깃 속으로 스며들고 피부가 반응할 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언어보다 먼저 도착한다.


이 순간에는 껍데기가 없다.
본질이란 거대한 통찰이 아니라
걱정이 잠시 멈춘 틈새로
바람처럼 스며드는
이런 감각일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차오르는 뿌듯함과 감사.
시린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의 포근함.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


사라질 걱정들을 붙드느라
에너지를 쓰는 대신,
존재하기에 비로소 만질 수 있는
이 사소하고 위대한 감각들 곁에
오래 머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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