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과 나날> 보며..
우리는 늘 무언가를 정의하며 살아간다.
슬럼프, 실패, 정체기.
내 삶의 속도가 타인의 기대나 나의 계획보다 느려질 때,
우리는 서둘러 그 시간에 이름을 붙이고,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영화 《여행과 나날》 속 주인공 ‘이’가 마주한 시간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이에게 찾아온 침묵,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는 시간,
그리고 재능의 부재를 고백해야 했던 GV의 무대 위.
그 장면들은 분명 암울하고 슬픈 좌절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주인공이 말과 글로부터 멀어지려 애쓰는 모습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규정되지 못한 시간들, 차마 이름 붙여지지 못한 나날들.
그 막막한 풍경을 ‘좌절’이라는 프레임이 아닌,
아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시간은
사실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다림의 숙성이었고,
아무런 목적 없이 눈밭을 걷거나
낯선 여관 주인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이른바 ‘쓸데없는 시간’들은
메말랐던 감각을 다시 깨우는 가장 풍요로운 휴식처럼 느껴졌다.
비극이라 믿었던 순간들은
카메라 렌즈를 한 뼘 뒤로 옮기자
때로는 피식 웃음이 나는 해프닝이 되었고,
때로는 다정한 농담처럼 다가왔다.
인생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매 순간
명쾌한 문장을 쓰고 싶어 한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문장,
깔끔한 마침표로 끝나는 서사.
하지만 때로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 미완의 문장들,
이름 붙이지 못한 공백의 시간들이
우리를 오히려 구원한다.
주인공의 굽어 있던 어깨가
겨울산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서히 펴지듯,
나 역시 내가 보낸 ‘실패의 시간’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 시간들은 결코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을 뿐,
나라는 사람을 더 깊고 단단하게 빚어내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안다.
내 삶의 프레임을 아주 조금만 바꿔본다면,
오늘의 막막함 또한
언젠가 빙긋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여행의 한 장면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