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지도 연속) 마음이 소란한 날, 붓을 듭니다.

- 작업이 삶을 위로할 때

by 서히

작업은 세상을 향한 발언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무언가를 말하고, 보여주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

하지만 오래 캔버스 앞에 서 있다 보니
저에게 창작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설득하기 이전에,
저를 겨우 붙들어두는 한 번의 숨이었습니다.


내 안의 소음을 견디는 방식

어떤 하루는 유난히 시끄럽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
겹겹이 쌓인 역할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그 모든 것이 안쪽에서 뒤엉켜
정리되지 않은 채 머물 때,
작업은 그 소음을 잠시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선을 긋고,
색을 얹고,
다시 지우는 반복 속에서
저는 비로소 제 안의 혼란을 눈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감정이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조금 덜 흔들립니다.


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

작업이 현실을 바꾸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저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하루라도
붓을 쥐는 그 순간,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감각이 분명해집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역할과 상관없이
이 선 하나만큼은
지금의 제가 선택했다는 사실.

그 작은 선택이 하루를 통과할 힘이 됩니다.


위로는 해결이 아니라 동행

예술이 삶을 위로한다는 말은
거창한 치유를 뜻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의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 곁에 잠시 함께 머물러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작업은 제 감정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지라고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라고
조용히 옆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창작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이기 전에
저를 향한 가장 다정한 동행이 됩니다.


이 좌표는 “이 작업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가 아니라
“이 작업이 오늘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창작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이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를 오늘 하루 더 버티게 하는 작은 질서는 됩니다.




좌표30. 위로

작업이 삶을 위로할 때, 그 위로는 조용합니다.
소음을 완전히 없애지 않지만, 그 소음을 조금 덜 두렵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는 내일도 다시 붓을 들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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