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인사
서른한 개의 좌표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던졌고,
망설였고,
결정했고,
무너졌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선이 힘을 잃었고,
어떤 날은 노이즈를 견뎌야 했으며,
어떤 날은 불완전한 작업에 마침표를 찍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창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하나의 지도를 함께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지도를 오래 들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도는 길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저 막막한 출발을 조금 도와주는 종이일 뿐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걷는 곳은
종이 위의 선이 아니라
지금 발밑에 닿아 있는 땅입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고,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할지도,
언제 멈춰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정.
고유성.
노이즈.
마침표.
비움.
위로.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그 단어들을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몸이 먼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는 감각,
지금은 비워야 한다는 직관,
이 흔들림을 남겨둘지 지울지 판단하는 믿음.
좌표는 사라지고, 길 위에 서 있는 나만 남습니다.
이 여정이 끝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마 완벽한 해답이 아닐 것입니다.
대단한 기술도 아닐지 모릅니다.
대신 이런 감각 하나는 남았기를 바랍니다.
무너져도 다시 앉을 수 있다는 것.
불완전해도 멈출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감각이 있다면
이제 지도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이제 지도를 접어도 됩니다.
남은 것은 묵묵히 걷는 일뿐입니다.
저 역시 여전히 배우고 헤매는 비전공자 작가이지만,
이제는 그 헤맴조차 저만의 길임을 믿습니다.
그동안 저의 지도를 함께 걸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각자의 길 위에서
언젠가 또 다정하게 만나요.
좌표 31. 길
지도는 길이 아닙니다.
길은 언제나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