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오랫동안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왜 그려야 하는가’라는 질문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 질문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느끼고,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왜’라는 질문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예술의 방식을 빌려 내가 세상과 만나는 그 순간 —
나는 가장 나답게, 가장 진실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을.
결국,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예술이 나에게 무엇이길래, 나는 이토록 이 방식을 사랑하는가.”
불안을 한가득 짊어지고 시작한 나의 처음.
한없이 서툴러 보이는 손끝,
미술 비전공자라는 거리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
그러나 그 모든 혼란은 결국 나를
‘나만의 언어’로 이끌었다.
그 언어는 말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즉흥의 선, 흔적의 층위, 소음의 파열, 돌봄의 손길,
심연의 속삭임과 공명의 떨림,
그리고 여전히 빛나는 점열들.
그 모든 것이 나의 언어이자, 나의 문장이다.
나는 예술을 통해 세상을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나를 통과하며,
스스로의 형태로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캔버스 위의 선 하나,
그건 나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세계의 울림으로 완성된다.
흔들리는 선의 시작을 따라 그리다 보면,
나는 어느새 나와 세계가 서로 마주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곳에서 나는 깨닫는다.
예술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 ‘듣는 일’이며,
‘조형’이 아니라 ‘공명’이다.
예술로 산다는 건
끊임없이 감각하는 존재로 머무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때로는 멈칫하고, 때로는 흔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세상이 나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내 삶의 기록이자,
세상과 내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나는 오늘도
그 언어로 세상을 부른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해 —
작가 메모.
예술은 나로 하여금 세상과 다시 연결되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각하며 그 감각으로 다시 세상을 쓰는 일.
나는 나의 언어로 예술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