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빛나는 것들

- 사라진 자리의 온기

by 서히

모든 생명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씨앗은 땅의 차가운 어둠을 통과해야 싹을 틔우고,
별빛은 광대한 어둠 위에서만 반짝일 수 있다.

나의 회화 속 ‘빛’도 그러하다.
그것은 고요한 명상이 아니라,
혼란과 상실을 통과한 뒤에 피어오르는 생명의 징후다.


나는 자주 가장 어두운 색 위에 가장 밝은 색을 얹는다.
그 경계의 떨림 속에서 미세한 숨결이 일어난다.
빛은 완전함의 결과가 아니라,
파열 이후에도 꺼지지 않는 존재의 온기로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그리는 빛은 ‘밝음’이 아니라 ‘남음’이다.
사라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그 모든 흔적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것들.
그것들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조용히 빛난다.


여전히 빛나는 것들 — 점열(點列)의 생명

빛은 나에게 ‘끝’이 아니라 ‘남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라진 것의 흔적이자, 여전히 숨 쉬는 존재의 리듬이다.
나는 자주 캔버스 위에 작은 점열들을 그린다.
그 점들은 타버린 자리 위에서 마지막으로 깜빡이는 불씨 같고,
사라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신호 같다.

그것들은 사랑의 파편이며, 심연의 호흡이며, 돌봄의 진동이다.
나는 그 점들을 그릴 때마다 느낀다.
이것은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사라짐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생명의 증언이라는 것을.
빛은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의 자리에서 깨어난다.
상처와 소음, 파열과 피로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 —
그것이 내가 말하는 ‘여전히 빛나는 것들’이다.

빛을 다룬 예술가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빛의 화가’라 불린다.

그에게 빛은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의 리듬이었다.

그의 〈수련(Water Lilies)〉 연작은

매 순간 변하는 자연의 숨결과 존재의 덧없음을 포착한 시각적 명상이다.

빛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의 흐름이었다.

Claude Monet, Water Lilies, 1916. Oil on canva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

공간과 빛을 재료로 사용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의 경험’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품 〈Aten Reign〉(2013)은

하늘의 빛을 건축 내부로 끌어들여

인간의 시지각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에게 빛은 시각이 아니라,

존재가 깨어나는 경험 그 자체였다.

James Turrell, Aten Reign, 2013. Guggenheim Museum, New York. © James Turrel


일본의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1929– )
빛과 거울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남아 있는 존재의 흔적을 탐구했다.
그녀의 설치작품

〈Infinity Mirrored Room —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에서는

어둠 속 수천 개의 점과 빛이 끝없이 반사된다.
그 공간은 마치 사라진 영혼들이 서로를 비추는 무한의 은하 같다.

쿠사마에게 ‘빛’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상처를 통과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이었다.
반복되는 점과 반사된 빛의 파동 속에서
그녀는 “사라짐 이후에도 존재는 계속된다”는 믿음을 그렸다.

그녀의 빛은 고독을 통과한 생명의 박동이며,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씨다.
그 수많은 점열들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것들”을 말한다.

Yayoi Kusama, Infinity Mirrored Room, 2013. © Yayoi Kusam



나의 빛, 나의 생명

나의 회화 속 점열들은 쿠사마 야요이의 빛처럼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것들’이다.

돌봄의 피로, 상실의 무게, 삶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나는 그 잔해를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빛을 발굴하려 한다.

내 그림은 기억의 재구성이 아니라,
소멸로부터 피어오르는 생명의 증언이다.

‘빛’은 나에게 불완전함의 미학이다.
사라진 것의 자리에서 새로이 피어나는 생명,
상실 이후에도 꺼지지 않는 온기—
그것이 내가 그리는 여전히 빛나는 것들이다.



Seohee, <그안에 있었다> 2025, mixed media on canvas


작가 메모.

빛은 나에게 사라진 것 이후에도 남아 있는

따뜻한 생명의 흔적이다.

부서지고 꺼진 자리에서도

그 온기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당신 안에서 꺼지지 않고 여전히 빛나는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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