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마지막 순간이 있었을까

익숙한 시간 속 마주한 작별의 흔적

by 서휘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어느 날 당신의 부모님은 마지막으로 잠든 당신을 업어주셨고,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당신의 손을 잡아주셨고, 마지막으로 당신과 함께 장난감 코너에 가셨다.


또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어느 날 당신은 마지막으로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에 마법 같은 설렘을 느꼈고, 마지막으로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에게 "내일 또 만나"라고 말한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숏폼 내용을 조금 각색했다. 이런 장르를 '드림코어'라고 한단다.


익숙하지만 몽환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 아름다움, 향수, 괴리감, 위화감을 동시에 안겨줌.


참 잘 만들었다. '사무칠 정도로 그립다'는 댓글 말이 딱 맞다.


부모와 친구의 존재는 물론이고 지금 누리는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몰랐다. 꾀병이라도 부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할 때 누군가는 하루빨리 병상을 털고 일어나고 싶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지독하게 하기 싫은 공부가 1950년대생 어르신들에게는 제일 하고 싶은 것인 줄도 몰랐다. 하긴, 그런 것까지 생각할 줄 알면 애가 아니라 인생 3회 차 90살 먹은 철학자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도 10년 후, 20년 후 돌아보면 "그때도 나름 괜찮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졸업 후 사회에 던져져 모든 게 무서웠던 그 시절의 내가, 사실 가장 용감하고 단단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올까. 지옥 같은 취업난에 영영 백수로 사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했던 날조차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발버둥 쳤다'며 기특해할 날이 올까.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더 생생하게 각인시킨다고 한다. 어쩌면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행복할 때 행복한 줄 알고 힘들 때 힘든 줄 알면 좋으련만, 뒤늦게 깨닫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것'의 진짜 의미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긴 여행을 떠날 때가, 마지막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가,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웃음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오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하는 날도, 익숙한 출근길을 마지막으로 걷는 날도,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거나 우는 날도 오겠지.


그 모든 마지막이 영원한 끝이라고 믿지 않길.


언젠가 극야의 어둠에 머무르더라도 결국 백야를 맞이하길. 그렇게 모든 마지막을 살아내며 또 한 번의 시작 앞에 서길.


불행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더없이 찬란할 주인공을 위해 이야기의 첫 장이 조금 거칠었던 것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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