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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빈 Feb 19. 2016

시베리아로부터의 사색 3

[셋째 날] 바이칼호와 함께 달리다. 


8월 19일



아침이 밝으니 함께 했던 아저씨들이 짐을 싸고 있는다. 하루에 한 번씩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이 기차에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의 반가움과 아쉬움이 뒤엉켜 있겠지.


믿을만한 아저씨들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탁자 위에 두고 화장실에 갔다 오니, 내 앞에 탄 아저씨가 핸드폰을 잘 훔쳐가니 조심하라고 일러주는데 감동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이렇게 정을 주고,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는지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저씨들이 떠나기 전에 답례로 한국말로 적은 작별인사 쪽지를 전해줬다. 정말 별거 아닌 종이 쪼가리인데도 소중한 것인 마냥 꾸깃꾸깃 접어서 지갑에 넣는 모습은 다시 한 번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저씨들이 내렸고, 순간 터져나오는 그 아쉬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빈자리는 세 명의 아줌마들이 채웠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는  듯했지만 한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걸자 이내 긴장감이 풀렸다. 아줌마 셋이서 여행을 가나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들끼리 도란도란 여행을 가는 모습이 참 부럽다. 나도 80세 할머니가 돼서도 차를 끌고 친구들과 놀러 가는 여유를 가진 그런 멋진 할머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셋이서만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질투가 났는지 벌써부터 나를 ‘써킴’이라 부르곤 했던 아저씨들이 생각났다. 



러시아 기차에서는 가로세로 퍼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마치 퀴즈 대결을 하는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우리나라였다면 전부다 스마트폰을 들고 하루 종일 게임을 했을 텐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퀴즈만 풀고 있는 건너편 할아버지는 참 끈기 있어 보인다.


러시아엔 들 푸른 평원이 참 많다. 시야가 확 트여서 저 멀리까지 다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안경을 쓴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몽골 사람들은 눈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인구의 반 정도가 안경을 끼는 듯한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에, 가끔씩 만났던 안경 낀 러시아인들이 특이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늘도 날씨는 선선할 예정이다. 여기는 비가 오면 온도가 뚝 떨어져 마치 추운 가을 날씨와 같다. 조금 쌀쌀해지니 따뜻한 차 한 잔을 먹고 싶었는데 갑자기 내가 카누를  가져왔다는 게 생각났고 기분이 좋아졌다.


기차 안에서 무료로 빌릴 수 있는 컵! 정말 멋지게 생겨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었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반납했다.


어딜 가나 예외는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 지으면 안 되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여자들끼리는 친해지기 어려운 것 같다. 적어도 만남 초반에는 서로 꺼려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남자들의 경우 여자들에 비해선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경향이 더 큰 것 같아서 부러울 때가 많다.(편견일 수 있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아주 가끔씩은 여자들의 이런 성향에 대해 피곤함을 느낀다. 물론 나도 여자지만.


애덤 스미스는 이전에 시간을 때우려 책을 한 권 썼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부론’이다. 교직에서 사임 후 한 귀족 가문의 교사로서 프랑스에 머물 때였다. (물론 이 속에서의 경험이 책을 집필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감히 애덤 스미스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도 이 지루한 시간 동안 쓰고 있는 글이 멋진 여행기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전부터 한 가지 꿈이 있었다면 죽기 전에 책 한 권을 쓰는 일이다.


평균 80~90km 정도의 속도로 6박 7일간 달리는 이 열차를 보니, 만약 우리나라의 KTX와 같은 고속철도가 도입된다면 300km 이상의 속도를 가진 기차로 평균 2~3일 권으로 유럽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가슴이 뛰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돼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차 안에서 본 러시아인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먹거나 마신다. 밥을 먹고 빵을 먹고 야채를 먹고 해바라기씨를 먹고 초콜릿을 먹고 차를 마신다. 이것이 이들의 신체적 발육의 근원인가 싶었다. 하하


이렇게 시간이 많을 줄 알았더라면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걸 가져왔으면 좋았겠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조립할 수 있는 것이라던가. 하지만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짐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다 빼버렸던 나이기에 뭔가를 샀어도 절대 안 챙겼을 것 같다. 겨우 배낭 하나 매고 교환학생을 떠나는 주제에.



내가 탄 칸은 역방향에다 화장실 바로 옆에 있는, 기차 내 가장 최악의 위치였지만 이런 환경에 피곤함을 느끼는 성격은 아니라 크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일주일 간 굉장히 고통스러웠으리라. 하기야 불편함을 참지 못할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이 열차를 타지 않았겠지.


오늘은 날이 좋아 또다시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저께에 비해 더위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아줌마들과 대화를 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에 아줌마들이 하고 있는 낱말퍼즐 책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엄청 웃는다. 그 뒤엔 해바라기씨와 과자도 사진으로 담았는데 이때부터 나를 아주 촌년으로 봤나 보다. 맥가이버칼을 꺼내 신기하지 않냐며 360도 회전시키고 칼을  하나하나 꺼내 홈쇼핑 광고를 하듯 소개한다. 휴대용 커피포트는 상품성이 있어 보여 신기했지만(우리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맥가이버칼은 정말 아닌 것 같아서 무시해버렸다. 우리나라에도 다 있고, 훨씬 더 좋은 것이 많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이후로 나에 대한 아줌마들의 경계가 좀 풀렸는지 내게 온갖 먹을거리를 챙겨줘서 좋았다. 



잠을 여유 있게 자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 이 기차에 적응이 되어 긴장이 좀 풀려서인지, 시간이 빨리 흐르는 느낌이다.


아줌마들이 내게 준 과일은 달지 않은 사과 맛이었다. 맛은 괜찮았는데 조금 쌉싸름했다. 사과와 배를 섞어놓은 맛이다. 하나는 내일 아침 디저트로 먹어야지.


한 아줌마가 카누 하나랑 러시아 커피믹스를 바꾸자고 했다. 아메리카노라니까 다른 친구에게 자랑을 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5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처럼 노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아줌마들은 먹을 것에 약한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렇다. 아줌마들이 주는 것을 열심히 먹다 보니 갑자기 '이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든걸 보니, 역시 여자들은 먹을 것, 남자들은 술이 만국 공통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머나먼 땅에 와서야 깨닫다니.



9,288km, 이 엄청난 길이의 철길을 관광지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2년 전 나는 우리나라 4대 강 자전거 국토종주를 한 경험이 있다. 4대 강 사업은 몰라도 이 자전거 길을 통해 하나의 관광 상품을 만든 것에 대해선 충분히 만족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러시아 횡단 열차에도 도입한다면 전 세계의 모험가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철길 주변 또한 유명한 관광지가 될 가능성도 커, 러시아 관광 시장의 활성화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며, 이 철길을 따라 자전거 도로로 러시아를 하나로 이을 수 있다면, 아마 아메리카 대륙만 제외하고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거대한 자전거길이 완성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열차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이 여행이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그 생각은 더욱더 현실로 다가왔다. 러시아 정부가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이 열차를 통해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으리라. (나중에 교환학생 학교에 도착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인이 실제로 자전거로 러시아 횡단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단지 상상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해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집 대부분은 나무나 판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70년대의 마을 모습이랑 흡사했다. 그러나 가난해 보인다기보단 빈티지 느낌이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리곰탕면을 꼭 챙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사리곰탕면을 먹고 있는데 타지에서 먹는 곰탕 맛은 일품이다.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오늘은 잠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언제 또 이렇게 자 보겠냐며 나를 위로해본다. 식당 칸이랑 맨 앞 칸에도 구경삼아 가보고 싶지만 사람들이 동양인을 너무 빤히 쳐다보는 게 민망해서 저 먼 곳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다.


러시아의 커피믹스 맛은 우리나라 맥심 골드와 맛이 비슷하다. 단지 러시아 사람들은 물을 좀 더 많이 붓는 것 같다. 단 맛,  짠맛을 좋아하면서 왜 커피는 싱겁게 먹는지 모르겠다.


오기 전에 남자친구가 보여줬던 ‘영국 남자’라는 유튜브 영상이 생각났다. 한국의 특징적인 음식을 본인 친구들에게 맛보게 한 뒤의 반응을 영상으로 담은 것인데, 그들의 리액션이 흥미진진해서 시리즈를 계속 보게 된다. 한국의 맛을 외국인이 홍보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신선했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음식의 특징적인 것들을 친구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다. 그러나 택배비가 엄청나겠으니 패스...


배터리 충전이 어렵기 때문에(사람은 많은데 콘센트는 4개이고, 또 전기 전원을 꺼두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충전이 어렵다.) 나는 계속 핸드폰을 꺼두고 있었다. 그리고 3일 만에 큰마음을 먹고  다운을 받아 온 한국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들으니 내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 자이언티 노래는 더더욱 그랬다. 원더걸스 노래는 나에게 리듬을 실어주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에는 아이돌 노래가 굉장히 가볍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외국에 나와 있으니 괜히 더 좋아진다. 음악은 사람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먼 타지에서의 한국 노래는.


smola라고 하는 껌인지 뭔지 정체모를 무언가를 누군가가 기차 안에서 팔자, 내 앞에 앉은 아줌마들이 한 개씩 샀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 입을 줬는데, 정말로 맛이 없었다. 끔찍했다. 나중에 탄 목사님한테 물어보니 나무 추출물로 만든 껌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내 러시아인 룸메이트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안 먹어 봤는데 어떻게 먹어봤냐며 놀란다.



반나절을 함께 했던 아줌마들이 떠난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니 정말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또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게 될까. 이별이 정말 아쉽긴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을 기다리는 그 설렘도 좋다.


머리를  3일째 안 감았는데 애초부터 각오를 하고 타서 그런지  견딜만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드라이 샴푸도  한몫했다. 그래도 가려운 건 어쩔 수 없다. 


기차에는 칸마다 앞뒤로 화장실이 있는데 역과 가까워질 땐 역무원이 와서 잠가둔다. 그리고 출발한 뒤 10분 정도가 지나야 화장실 문을 다시 연다. 아마 바닥으로 오물을 떨어뜨리는 시스템이기 때문인 것 같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땅이 넓어서 그런지 여긴 아파트가 거의 없다. 아마 대도시에 가면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이 단독주택이다. 땅이 넓기 때문에 우리처럼 부동산 투기나 땅으로 인한 사람들 간의 갈등, 스트레스는 일어날 일이 없겠다고 생각하니 정말 부러웠다. 만약 우리나라 땅이 러시아만큼이나 커서 땅으로 인한 사람들 간의 갈등이 없었다면, 또 어떤 갈등이 사회의 주요 이슈로 나타났을까. 


물론 가끔씩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90년대 쓰던 핸드폰을 사용한다. 90년대는 오버인가, 그러면 2000년대 초반의 느낌의 중고폰을 가져다 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또한 대부분이 미니 태블릿을 가지고 다닌다. 뭔가 아이러니했다.


아직까지는 이 생활이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은 걸 보면 나는 인내심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본래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견디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자전거 종주와 국토대장정 때 배웠던 사실이다. 도착 하루 직전인 6일째가 나에게 가장 큰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줌마들이 내리면서 갖고 있던 음식들을 몽땅 내게 주고 갔다. 과자부터 시작해서 사탕, 우유, 차, 주스가 내 자리 주변에 가득 차니 돼지우리 같았다. 울란 우드 역에서는 몽골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동양인의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


이번에 우리 칸에 탄 손님들은 성직자와 여자 두 명이다. 남자는  온몸을 검은색으로 감싸고 있었고, 0.1t은 거뜬히 돼 보였다. 제발 내 윗 칸에는 안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건만 생각대로 T  ♪라고 했던가, 내 윗 칸이다. 맙소사. 오를 때마다 침대에서 나는 삐그덕 소리는 침대 구조물이 무너져 나를 덮치진 않을지,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성직자는 무겁고 답답해 보이는 검은색 옷을 하나하나씩 벗어두고 나서야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첫 대사는 ‘코리아!’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제목을 보고 한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글을 알아보는 것도 신기해서 물으니 아저씨 교회에 한국인이 다니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이 사람은 교회 목사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처음으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고, 정상적인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트에서 열리는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까지 나와 약 3일간  동행하게 된 이 아저씨는 며칠간 거미줄 쳐진 내 입을 열어준 사람이었다. 이 아저씨의 생김새는 경철이와 비슷하다. 특히 코가. 갑자기 이 아저씨를 보고 경철이를 생각하게 된 것이 너무 웃겼다. 한국에서도 경철이를 보면 웃음이 나오는데. 나의 친한 친구와 닮아서인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금까지 만난 러시아인 중 나를 가장 편견 없이 대해준 사람이기도 하고, 3일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기 때문에, 아마 지금까지도 많이 생각나는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다.


우리 기차 칸에 같이 탄 학생들은 저녁 시간만 되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시베리아 기차 속 친구들과의 낭만적인 합창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편으론 같은 나이의 우리나라 중학생들을 떠올려보니 안쓰러웠다. 이 친구들처럼 삶을 한창 즐겨야 할 나이에 학원에 박혀서 글로만 세상을 배워야 한다는 한국의 현실이 각박하게 느껴졌다.



창밖을 바라보니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그 크기만큼이나 마음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노을이 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니 그 감동은 더해진다. 한참 동안이나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러시아 내륙에 바다가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드디어 바이칼 호가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감동 때문에 온 몸에 전율이 이는데, 그 당시에는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스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혼자 보고 있는 것이 너무 아까웠고, 부모님도 이 광경을 본다면 틀림없이 좋아했을 거라 생각하면서 나중에 꼭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그 어떤 호수를 보며 이것과 같은 웅장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몇 시간을 달려도 펼쳐지는 지평선을 보면서 오랜만에 사색에 빠졌고, 아름다움에 젖어들었다. 이 주변에서 살게 되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정적인 환경은 분명 따분함을 가져다 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아마 1박 2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저씨가 사과랑 포도를 줬는데 너무 오랜만에 먹는 과일이라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이 모습을 본 반대편 여자가 싱긋 웃는다. 한국에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과일을 먹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어려우니까 과일 생각이 많이 났다.


기차를 탄지 딱 3일이 지났고, 앞으로 딱 3일이 남은 이 중간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이 안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처음엔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러시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쌀쌀맞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이 나라에 들어왔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표정에서는 물론 그렇게 느낄 수 있겠지만 본심은 우리처럼 정 많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멋진 나라였고, 나는 이 나라가 좋아졌다.



한 사람의 성장은 새로운 세계 또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때 이뤄진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한다. 그동안에 내가 한 층 성장했던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힘든 일을 경험했을 때 또는 보통의 때와는 다른 일을 경험했을 때였다. 이번 여행 그리고 교환학생은 내게 얼마나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될지  기대된다. 그리고 이번 6개월이 더  기대되는 이유는 이토록 오랫동안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년에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 한층 더 멋진 사람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다. 부모님과 예준이도 보고 싶고, 남자친구도, 내 친한 친구들도 무척이나 보고 싶다. 그리고 가끔 어떤 한 사람이 생각나면 연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르는데, 그때마다 나오는 눈물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나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그만 떠올리기로 했다. 그리움은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삼시 세 끼' 프로그램을 보면 밥만 잘 챙겨 먹는 것으로도 하루를 충분히 보낸다. 기차여행을 하며 지루한 점은 없다. 거짓말인가? 하하. 3번의 밥을 챙겨 먹고,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책을 읽고, 때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그냥 이렇게만 해도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한데,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바쁘게 지내왔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단위로 쪼개서 사는 것이 현명하고 알찬 삶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번 기차여행은 그동안의 삶이 누구를 위한 삶이었나 라는 물음을 던졌다.


내가 지난 3일간 이 좋은 풍경을 놓치고 잠이나 자고 있었다니. 멍청하다. 하늘에 떠있는 별이 그야말로 ‘대박’이다. 어딜 가든 빛이 가득한 한국에서는 아무리 시골이라 한들 이렇게나 많은 별들을 볼 수 없었는데, 정말 ‘별이 쏟아진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밤하늘이다. 마치 내가 우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깥엔 드넓은 바다가, 저 위엔 우주가 펼쳐진, 이곳은 바이칼이다.


한 통 사온 물로 머리를 감았다. 기차 화장실은 엄청 흔들리고 씻기에 열악한 환경이지만 나는 국토대장정 때도 열악한 상황에서 씻어본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꿈에 그렸던 이르쿠츠크 역에 내렸다. 그런데 이게 뭐람. 내가 꿈꿨던 풍경과는 달리 그냥 번화가였다. 유명한 관광지 주변이라서 그런가 보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려고 새벽 2시가 되도록 안 자고 있던 건데, 아쉬웠다. 마실 물을 한 통 사들고 들어와서 나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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