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SH Aug 08. 2016

기준

깊이에의 강요

< 깊이에의 강요>_파트리크 쥐스킨트 _1996


                                                                                                                                                      2016.04.05




기준


‘깊이’. 진정성을 말하는 걸까, 아님 작품의 충실성이나 무게를 말하는 걸까. 처음부터 ‘깊이’라는 기준이 나에게는 애매했다. 글이라는 한정된 소재 안에서 여류 화가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부터가 나의 기준에서 어느 쪽에 놓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기준점을 세우기 애매했다. (그렇다고 책이 별로였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좋았다.) 


한 평론가의 말을 시작으로 젊은 여류 화가의 그림은 깊이가 없어졌다. 

처음부터 없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그 깊이가 있었는지 혹은 그 평론가는 느끼지 못했던 그녀만의 깊이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사람의 말을 시작으로 그녀의 그림은 순식간에 깊이 없는 그림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여류화가의 끝은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시작점을 찾아보려 했다. 

평론가의 비평이 원초적 시작이었을까? 

평론가의 말과 사람들의 시선으로 자신의 그림에는 깊이가 없다고 생각한 그 여류 화가가 문제였을까? 

혹은 평론가의 말을 시작으로 여류 화가의 그림에는 깊이 없다고 동조한 사람들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이라며 자신에게는 일말의 잘못이 없다고 여기려는 평론가가 문제였을까? 


결국 난 어느 상황이 먼저였던지 각각의 상황마다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을 시작점으로 두던지 간에 뒤에 이어진 상황들이 ~하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평론가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그림에는 평론가가 모르는

어떠한 것들을 담아내었다'는 그 화가의 반박적인 말 한마디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 말 한마디였다면 오히려 역으로 평론가가 그림을 볼 줄 모른다고 여겨졌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남들이 깊이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깊이 있는 

그림을 소신 있게 그렸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평론가의 말을 시작으로 한 마녀사냥급의 동조 현상이 없었더라면 그 화가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권위자, 혹은 전문가를 통해 한 말로 인한 여론몰이 현상에 휩쓸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평론가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보는 만큼 보고, 느끼는 만큼느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 평론가도 화가가 직접 작품의 정확한 해석을 하지 않는 한 그의 비평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지 않은가? 각자의 느낌대로 작품을 봤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예술 작품에 대해 그렇게 조예가 깊지 않다 보니 남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그만큼 느끼지 못 한다면 나한테는 뛰어난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잘 몰라도 내가 그 작품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그게 나한테는 예술 작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 


마지막으로 평론가의 태도가 달랐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평론가는 자신의 비평이 화가의 결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비평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식의 또 한 번의 글이 아니었다면 평론가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달랐을 것이다. 자기 위안의 글이겠지만 나에게는 비겁한 글로 보였다. 누군가는 평론가의 글처럼 개인의 문제(혹은 그녀가 나약하다고)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나처럼 원초적인 시작은 그 비평에 있다고 여기는 누군가도 생길 수 있지 않은가? 그녀의 죽음이 당황스럽겠지만 그전에 기회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한 깊이에 대한 정도를 설명하는 글을 썼더라면, 또는 누군가가 자신의 말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면, 위로든, 해명이든, 조언이든 그녀의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글을 썼다면 젊은 여류 화가의 생(生)도, 작품도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기서 나는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밝힐 출발점

이라는 기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깊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론가의 말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은 화가처럼 나 또한 그가 말한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책이라는 한정된 글 때문에 우리는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 깊이라는 것은 더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책에서는 여류 화가의 작품이 깊이가 없는 것으로 전락도 했고, 화가가 죽기도 했듯이 내 머릿속에서는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여러 가정들이 전개되었다. 


이것은 책을 떠올리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작품을 볼 때도 그랬다. (도덕적, 인도적, 법률적 차원의 것을 제외하고) 사람은 어느 작품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각자의 기준에서 바라보기 마련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기준점’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가 경험한 만큼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깊이에의 강요라는 제목에서부터 그 깊이기준을 생각했으면 한다.



+) 깊이에의 강요는 총' 1. 깊이에의 강요    2. 승부    3. 장인 뮈사르의 유언    4.   그리고 하나의 관찰 '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_ ⓒ네이버북스 이미지

-



깊이에의 강요 - output -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