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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SH Jul 14. 2016

살면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자이가르닉 효과로 인한) ‘사람’과 ‘말’ 사이의 뫼비우스의 띠

 (자이가르닉 효과로 인한) ‘사람’과 ‘말’ 사이의 뫼비우스의 띠


                                                                                                                                                     2016. 03. 15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오랫동안 혼자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나의 성향 때문인지 어렸을 때 나는 시끄럽고 북적거릴 때의 집을 좋아했다. 그래서 친척들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혼자 들떠 있었다. 시끌벅적 대는 분위기도 좋았지만 ‘사람’이 좋았다. 우리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가족 구성원도 다르고 환경이 다른, 나와는 ‘다른’ 그들과 친해져 정서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느낌이 들 때를 좋아했다.


 그렇게 친구들을 좋아했고 잠깐의 스치는 인연이어도 쉽게 놓지 못했다. 그래서 모임들을 꼭 꾸준히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들 서로의 환경이 바빠질수록 조금씩 뜸해지는 일들에, 다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가 라는 마음에 속상해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경계가 더 명확하게 생겼고, 내 사람들에게 오로지 집중했다. 그러나 내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 결국은 멀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이어가려고 한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들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었고, 나도 그랬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오히려 꾸준히 연락하며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었고, 한때는 매일 이야기를 하며 붙어 다닌 내 사람과도 어느 순간 뜸해지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상처받기 싫음에 혼자 먼저 방어를 하게 되었다.


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의 인연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한 후부터는 말(언어)에 예민해지게 되었다. 사람은 영어의 어원에 persona로 가면이란 뜻이 있지만, per과 sonare를 풀면 (입으로) 소리를 통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 나는 사람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그 울타리를 이루게 하는 장치(말)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건 잘못되었지만)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 성향인지를 관찰하는 데 있어, 예전에는 첫인상이나 나와 비슷한 취향, 혹은 라이프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말을 어떻게 하는가로 바뀌게 되었다. 말은 가장 진화된 커뮤니케이션이면서도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라, 말로 인해 어느 정도 그 사람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생각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말을 하는지, 혹은 높임말과 존칭어를 제대로 사용하는지 등을 보게 되었다. 누구나 말로 인해 실수를 할 수 있지만(친한 사이이건 아니건 –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을 배려하면서 말을 하는지 아닌지, 혹은 생각을 하고 말하는지 아닌지를 보게 되었다. 예로 부모님나 윗사람을 ‘당신’이나 ‘본인’이외에 ‘자기’라고 호칭하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냥 말을 놓는다 지 혹은 화법이나 언어 사용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정확히는 기준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랑 하는 얘기로 인해 관계가 유지되는지 안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결국은 사람을 놓지 못 해서 인지, 기자 준비를 하면서 언어 사용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고 민감해져 있는 상황에 공부를 접은 미련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나의 지금 이 상황은 ‘자이가르닉 효과’로 인해 결국 ‘사람’과 ‘말’ 둘 다를 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가 싶기도 하다.


「 자이가르닉 효과 ;
어떤 일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긴장이 지속되다 보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된다」


부끄럽지만 한 일화로 2015년 10월 4일에 썼던 일기가 있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 다 같을 수 없다는 것 다 안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지만 불쑥불쑥 마음을 다잡지 못할 때,

콕 집어서 상처를 준 건 아니지만 상처를 받고 머리가 복잡하고 터질 것 같다.

역시나. 아직은 어리며, 여리고, 어렵다.

라는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이때 당시는 친구의 화법 때문에 혼자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처음에는 ‘걔는 왜 그렇게 말하지? 참는데 한계가 생긴다, 혹은 안 그랬는데 왜 저러지 요즘 ‘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나는 그 친구의 말도 말이지만 그 친했던 친구, 결국 사람을 놓지 못 함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빗대어 본다면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직은 미완성의 단계이고 앞으로도, 아니면 죽을 때까지 미완성의 단계에 머무를 수도 있을 수 있다. 사람 관계에 있어 완전함은 없으니까. 극복하지 못하면 닮아간다는 말처럼, 사람 또는 사람과의 관계를 내려놓는 것을 극복하지 못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말로 바뀐 걸 수도 있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말이었는지, 혹은 사람과 말 둘 다였는지. 


나는 ‘사람’‘말’을 연결하고 있는 이 뫼비우스 띠 안에서 아직 제자리걸음 중이다.

하지만 이 띠 안에서 나는 성장했고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띠 밖으로 내려오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출처_네이버어학사전


살면서 내려 놓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 outp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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