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미장센 분석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 월트 디즈니는 도시 일대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가난도, 불행도 없는 ‘완벽하게’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 작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가 꿈꾸던 이상향에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 주변에는 환상적인 간판에 가려진 극빈층의 생활이 자리 잡는다.
다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실행된다. 이번에는 꿈의 공간을 위한 것이 아닌, 집 없이 떠도는 극빈층을 지원하는 정책의 명칭이다. 첫번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결국 부동산 가격을 올려 원주민을 내쫒는 결과를 낳았고 경기 침체 이후 디즈니랜드를 찾는 이들을 위해 지어진 알록달록한 모텔가는 슬럼가로 전락하였다. 주민들은 디즈니랜드가 생기면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관광지의 물가는 살인적이며, 어른들에게 꿈과 희망을 파는 공간에서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란 어렵다.
분명 화면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행복하게 뛰노는데 어딘가가 이상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플로리다의 보랏빛 모텔 ‘매직 캐슬’에 장기투숙을 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화 같지만 잔인한 현실을 그린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이라는 소름 돋는 문구를 선택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 무니와 친구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지만 각종 욕설과 폭력,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방화를 저지르는 등 마냥 어린아이다운 순진함 만을 보여주지는 않으며 그와 대조적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아픔이 가득한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극대화하는 화면의 찬란한 색채와는 대조적으로,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잡아낸 흔들리는 화면 속에는 도시의 백색 소음과 여름이라는 계절이 만들어낸 평온한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겨 있지만 OST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 등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은 ‘캐릭터 캐스팅’을 통하여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극대화시킨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배우들은 주인공들이 사는 모텔 ‘매직캐슬’의 매니저로 분한 ‘윌렘 대포’ 외에는 우리에게 낯선 얼굴들이었다.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물 캐스팅 스토리를 전했다. 수만 번의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역할은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 한 명이었다. 그 외에 엄마와 함께 쇼핑을 하러 갔다가 마트에서 캐스팅된 무니의 친구 ‘제시’ 그리고 실제로 매직캐슬에 사는 무니의 또 다른 친구 ‘스쿠티’까지 우리 주변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두 아이와 영화 시나리오가 실제 삶의 전부인 한 아이로 아역배우들을 구성하였다. 마지막으로 무니의 엄마 ‘핼리’ 역할에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브리아 비나이트’가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캐스팅되었다. 여담으로, 실제 영화는 디즈니랜드 근처의 모텔에서 촬영되며 해당 모텔의 투숙객들 또한 배우로서 등장하였다고 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들을 주로 캐스팅해요. 낯익은 얼굴이 아니라서 더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요.”라고 자신의 뜻을 전하였다. 연기 경력이 없는 일반인들까지도 배우로 캐스팅한 션 베이커 감독의 결정은 무모한 듯 보였지만, 오히려 그들의 삶을 엿보고 있는 듯한 담백한 연기로 관객이 보고 있는 장면 하나하나를 단순히 감독이 써 내려간 픽션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무니와 친구들, 그리고 핼리의 캐스팅과는 대조적으로 ‘매직 캐슬’의 지배인 바비는 ‘윌렘 대포’가 연기한다. 베이커 감독은 아마추어와 프로 배우가 서로 엮어가는 균형을 좋아해 평소에도 두 부류를 같이 캐스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아마추어 배우들 사이에 유명 스타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중요한 사회적인 이슈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스타’의 힘을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라는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다. 실로 영화라는 것은 그것이 전달하려는 바가 가장 중요하지만 배우가 주는 힘을 무시할 수 없고, 그런 점을 지난 단편 영화 감상(4월 단편 상상극장-숲으로 가자: https://www.sangsangmadang.com/movie/detail/1316)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비전문 배우를 주로 캐스팅하는 사실주의 영화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 속에서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 보게 된다.
매니저 바비는 모텔을 관리하며 스크린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을 대신한다. 모텔 앞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아동 성범죄자를 막아내고, 그들을 대신하여 밀린 방세를 내주며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려는 핼리를 설득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또한 가족과의 갈등으로 불행한 삶을 살며 타인의 삶에서 결국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는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바비는 온갖 불행을 포장한 매직 캐슬의 아름다운 보라색 벽을 끊임없이 덧칠할 뿐이며,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아동 보호국 사람들이 핼리와 무니를 떼어내려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스스로도 바비와 다를 바 없이 안타까운 현실에 침묵하고 있다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무니와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등 그 나이대에 적절한 교육을 받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핼리는 아이들 앞에서 욕설을 내뱉고 무니를 화장실에 내버려 둔 채 집 안에서 성매매를 하며, 무니는 천진난만하게 노는 와중에도 아이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한다. 그렇기에 영화 중반부까지는 부도덕한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키는 핼리나, 어린 나이에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을 만든 그 누군가를 문제 삼게 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핼리는 ‘무니가 이 세상에서 의존할 단 한 사람’으로 그녀의 범죄 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고 한 네티즌의 ‘어른들의 세상이 무니의 순수한 눈을 통해 한 겹 필터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라는 의견이 그 이유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이 정의를 되찾음으로 극장을 맴돌던 갈등이 해소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들을 고통받게 한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진정한 악당이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과연 나쁜 이들은 정부에서 무니를 구해주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인가 무지개가 띄워진 디즈니 성에서 동심을 찾기 위해 디즈니랜드를 찾은 어른들인가, 아님 이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스크린을 떠나는 순간 또다시 침묵할 우리인가? 극장에서 나왔음에도 며칠 동안 무니와 핼리가 일상 속에서 맴돌며 아직까지도 ‘매직 캐슬’ 속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이들에 대해 곱씹었다.
감독이 배우들을 촬영하는 방식과 배우들이 연기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는 아역들을 촬영할 때 항상 아이의 기준에 맞춘 아이레벨을 유지한다. 윌렘 대포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매직 캐슬에 사는 사람들을 직접 취재하여 바비라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은 아동심리학자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아역 배우들에게는 각자의 대사 만을 보여주며 촬영을 하였고 그 결과, 아이들이 각자 이해한 방식으로 웃고 떠들며 상당수의 애드리브로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완성되었다고 전했다.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가 담아낸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관객들이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된다. 아동 보호국 사람들이 성범죄에 노출된 무니를 ‘무책임한’ 엄마 핼리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했고 무니는 저항하다가 매직캐슬에서 도망쳐 옆 모텔에 사는 친구 제시의 손을 잡고 디즈니랜드로 뛰어간다. 모텔을 벗어나 ‘환상의 세계’ 디즈니랜드가 배경이 되었지만 우리는 무니와 제시가 머지않아 경비에게 잡힐 것이고, 엄마와 ‘집’이라고 불렸던 모텔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디즈니랜드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막을 내린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끝맺음 때문이었는지, 여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영화관에 불이 켜진 후에도 한참 동안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제 영화는 캐릭터가 중심이 됩니다. 배우들의 역량이 절대적이죠.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의 별일 없는 일상을 그저 따라가요. 그렇게 그들에게 충분히 공감하면서 쌓아온 시간들이 있기에, 어떤 변화를 맞이할 때도 곧장 거기에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션 베이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특별한 캐스팅 역량과 훈련되지 않은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극을 이끌어가는 독특한 힘을 지닌 영화이다.
출처:
션 베이커 감독과의 인터뷰:
https://m.blog.naver.com/cine_play/221255930960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560543&memberNo=34121768&vT
네티즌 리뷰:
https://m.blog.naver.com/sanlio777/221266057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