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담 X의 추락
존 싱어 서전트는 초상화 화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당시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아멜리 고트로를 그린 <마담 X>가 대중의 비난을 받자 프랑스를 도망치듯 떠난다. 그 후 영국에서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를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상처와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조영규와 데보라는 각각 분석적이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마담 X>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유와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에서 표현된 인상주의적인 표현이 그의 후기 화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화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던 그의 초상화 작품 가운데 <마담 X>는 기존의 초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져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마담 X의 옷차림이다. 일반적으로 19세기에 그려진 초상화 속 여인들은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나 마담 고트로는 단순한 형태의 머리 장식과 결혼반지를 하고 고전적 아름다움을 가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초상화의 배경을 어두운 색으로 처리하기를 좋아하던 서전트에게 검은색이란 대상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였고, 점잖으면서도 낭만적인 그 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한층 돋보이게 하였다. 서전트가 이에 그치지 않고 한쪽 어깨 끈을 흘러내리게 한 것은 관람객들이 그녀의 우아한 어깨로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 수단이자 여타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진 초상화와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절제된 장식은 곧 관람자들의 시선을 그녀의 몸매로 이끌었고 몸에 딱 달라붙는 드레스는 당시 사람들에게 정숙한 여성이라면 마땅히 입어야만 했던 페티코트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더불어 어깨 끈이 없는 어깨 주위는 위태로움을 자아내며 사람들에게 알몸과 간접적인 성적 암시를 연상시켰다.
서전트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표현해내기 위해 라벤더색과 청록색까지 사용하는 등 과거의 접근법을 적용하였고 그 결과 귀와 입술만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색을 띠게 되었다. 어두운 배경과 드레스와 대비되어 창백하다는 인상을 주는 피부는 모델을 시체처럼 보이게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마담 X>가 낯설게 다가왔던 원인은 기존의 초상화와는 다른 시선의 각도이다. 통상적인 초상화가 정면을 바라보거나 모델의 매력을 표현할 수 있는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택했다면 몸은 앞쪽을 향하고 있지만 얼굴을 옆쪽으로 돌린 고트로는 관람객을 외면하고 있다. 이집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시선의 처리는 이 모든 논란에 대하여 그녀가 무심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케네스 클라크는 <누드>에서 ‘누드’와 ‘알몸’의 중요한 차이점을 정립한다. 그는 ‘알몸’은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응당 느끼는 창피함을 암시하지만 ‘누드’는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불편함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암시한 것처럼 누드가 항상 순수하게 표현되어 왔던 것은 아니었으나 서전트가 < 마담 X>에서 사용한 표현 기법은 알몸을 연상시켰고 초상화에 있어 과감한 시도였지만 아직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살롱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끝내 서전트는 그와 그의 작품을 둘러싼 조롱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파리를 떠나 런던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존 싱어 서전트는 목가적인 풍경에 둘러싸여 생활하며 인상주의 기법에 크게 매료되었고 야외로 나가 빛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인상주의 작품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빠른 시간 안에 속도감 있는 붓질로 완성된다. 반면, 서전트는 늦은 오후가 저녁으로 바뀌는 마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다른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해 질 녘 황혼의 빛과 색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하여 짧지만 완벽한 20분 동안 매일 작업하여 2년 동안 그림을 완성하였다. 끈질긴 노력으로 전원적이며 색채와 빛의 눈부신 표현을 이루어낸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는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서전트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
당시 유행하던 조셉 마징히의 노래 ‘그대 양치기들아 나에게 말해다오’의 가사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작품 속의 아이들은 등을 들고 형형색색의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는 이른 나이에 예술 세계에 발을 들이며 누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경험을 하며 노래의 가사와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석양 무렵 템스 강에서 보았던 중국 등을 한 폭에 담아낸다. 두 가지 형태의 등불이 나란히 놓인 구도는 신비함을 자아내고 보는 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존 싱어 서전트는 국제적인 명성을 꿈꾸며 <마담 X>를 그렸지만 그림이 일으킨 파문으로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물지 못하고 영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가 완성된 이후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프랑스는 물론 영국과 서전트의 고향인 미국에서까지도 서로 그를 자신들의 땅에 붙잡아 두기 위해 작업을 의뢰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상화 중 하나인 <마담 X>가 이제는 많은 사랑을 받지만 사람들에게 외면받던 당시에도 서전트는 ‘I do not judge, I only chronicle’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표했었다. 신비로우며 순수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정지시킨 듯한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를 그린 이후 존 싱어 서전트는 영국에서 그가 사랑하는 풍경을 담은 수많은 그림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