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가는 날

by 채송화

詩 노란 개나리 철길 中


이제,

외할머니도 외갓집도 없지만

개나리는 세월이 지나도 시간의 흔적을 지우며

여전히 그대로의 모양으로 노랗게 피어나

외갓집 가는 길을 잊지 않는다


_서형《엄마의 채송화 꽃밭》




이 시는 내가 대여섯 날 때쯤 엄마와 단둘이 외갓집에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던 길의 이야기를 담은 시이다. 엄마는 고단한 결혼생활과 시집살이를 했다. 엄마의 그 고단한 결혼생활을 글로 담을 수 있을 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이 글을 읽은 많은 이들이 그냥 힘들었나 보다 하며 짐작해 주실 길 바란다. 다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엄마의 친정은 충북 옥천이었고 1년에 한 번 가기도 힘들었던 엄마의 고단한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대게 많은 사람들이 외갓집이라는 곳은 1-2년에 한 번 정도 가는 특별한 곳인 줄 알았다. 그리고 엄마의 고된 결혼 생활에 끼어들기도 간섭하지도 어려울 만큼 팍팍했던 우리 집에 평생 한 번 왔던 큰외삼촌은 큰 누나가 사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우리 집에 발길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다. 평생 누나 집에 한 번 왔던 큰외삼촌은 누이의 가슴 아픈 결혼 생활이 뼈에 사무치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 뒤 나는 크는 동안 멋진 큰외삼촌을 두어 번 본 것이 전부였고 얼굴이 하얗던 외삼촌은 결혼하기도 전에 병원에서 수술 중 돌아가셨다. 아리따운 청춘과 큰누나의 슬픈 결혼 생활을 마지막 기억으로 안고 떠났다.

그 당시 어려서 시간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아마 무궁화 기차로 3시간 넘어갔던 것 같다. 엄마는 눈물로 세월을 지새우고 눈물로 기차역에 가며 나만 데리고 갔다. 엄마는 결혼해서 아들 2명과 딸 1명을 낳았다. 그 딸 1명이 나였다. 엄마는 결혼이라는 돌덩어리를 머리에 지고 있지도 내려놓지도 못하고 어딘가에 내려놓으려니 그것이 딸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살기 힘들어서 몇 번을 외갓집에 도망을 갔다고 했다. 그런데 딸이 눈에 밟히고 내가 살기 힘들까 봐 엄마는 나를 위해 다시 돌덩어리 같은 결혼을 다시 가슴 속에 짊어지고 사셨다. 아들들은 어찌 살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눈에 밝히더란다. 아마 내가 딸로 어떻게 살아갈까 그렇게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지금 눈물이...)


그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기차를 타러 가는데 봄날이었나 보다. 우리 집 근처 기차역은 주변이 개나리꽃이 온 천지를 감싸는 곳이었다. 내가 그날 본 개나리철길은 외갓집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인생이 슬펐고 어린 나는 엄마의 심정을 온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그냥 어린아이였다. 노란 개나리 철길이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외갓집 가는 길이 엄마에게 그날 하루는 위로가 되었을까, 그날 내가 기억하는 노란 개나리 철길은 슬프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떠오르는 생각들은 엄마를 위해 온전히 울고 있는 노란 개나리들의 눈물이다.


외갓집 가는 길은 누구에게는 신나는 길이고 누구에게는 좋은 추억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엄마가 일 년 중 한 번 친정 가는 귀한 위로의 날이었다.


이제 외갓집도 외할머니도 없는데 엄마의 허전한 마음은 어떻게 위로받으며 어떻게 마음을 두고 사시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 허전한 마음은 지금도 봄마다 피어나는 기차역의 개나리꽃들이 외갓집 가는 길을 잃지 않게 해 준다. 그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면 나의 친정으로 갈 수 있다고.


봄날의 개나리꽃은
예전 엄마의 슬픈 시간들의 흔적을 지우며
그렇게 다시 피어난다.









매거진의 이전글주제가 있는 목적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