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접영신이 되고 싶은 저병신이지만 괜찮아

2023년 2월 14일. 올해 안에 접영 다 못 배우겠다. 확실하다.

by 뜨는작가 릴코

위로와 좌절이 동시에 되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힘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의욕이 꺾이고, 언뜻 안심이 되는 듯하다가도 왠지 곧이어 한숨이 나오는 그런 말.

접영은 원래 어려워요. 1년쯤 해야 감이 올까 말까예요.
10년을 꾸준히 하니 이제야 좀 알 것 같달까요.

자유수영 때 마주친 어느 고인물 선배의 따스한 청천벽력 한 마디. 주말 내내 곱씹으면서 이게 당근인지 채찍인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당근으로 만든 채찍이라고 결론 내렸던 그런 말이었다. 올해 안에 접영 신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목표였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초급반에서 두 달 차에 접영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우리 반 에이스 소리를 들으며 접영도 처음에만 어렵지 곧 깨우치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실은 진짜 에이스라서가 아니라 수영 유튜브를 하도 본 탓에 주워들은 이론만 많았음을 이제는 안다.) 초급반 2레인 바로 옆의 3레인은 우리 수영장에서 가장 빠른 상급반이었는데, 잔잔한 실내 수영장에 쓰나미를 일으키며 수면 위를 날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히어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뭐 때문에 그렇게 멋있어 보였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콕 집어서 설명할만한 특별한 이유는 별로 없다. 수면을 뚫고 날아오르는 힘찬 기상?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기는 유려한 웨이브? 어쩌면 그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영법이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이상형 리스트에는 어느새 접영을 잘하고 배영을 못하는 남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아, 배영을 못하는 건 왜 좋으냐고? 근육이 많으면 하체가 잘 안 떠서 배영에 불리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또 주워 들었던 터다.


접영은 과연 4개 영법 중 가장 마지막에 배우는 끝판왕인 이유가 있었다. 몇 달 동안 그 메커니즘이 아예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이렇게 힘들고 불편한 영법을 만들었는지 화가 잔뜩 나서 접영의 역사를 뒤져보기도 했는데, 유래를 알면 해결될 만큼 간단한 문제였다면 나는 지금쯤 이 글 대신 접영의 역사책을 쓰고 있었을 테다. 특히 나를 헷갈리게 했던 건 사람마다 설명이 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누구는 입수킥을 잘 차야 한다, 아니다 출수킥을 더 세게 차야 한다, 다 틀렸고 타이밍이 중요하다, 무슨 미해결 난제라도 푸는 중인지 답안이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수영하는 모습을 봐도 다른 영법에 비해 사람마다 스타일의 차이가 확연해 보였다.


그래서 내 접영은 지금 어떤 꼴인지 알고 싶어졌다. 왜 나는 출수가 도무지 되지 않고 팔이 수면에 걸린 채로 주르륵 쓸고 넘어오며 브레이크가 걸리는 걸까? 어떤 꼬락서니로 허우적대길래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처럼 보인다는 걸까? 직접 목격하면 너무 충격받아서 수영이 하기 싫어지려나 걱정도 좀 되었지만 궁금함과 답답함이 두려움을 앞섰다.


영상 속의 나는 뜻밖에도 물 밖으로 굉장히(너무) 많이 올라오고 있었고 동시에 어떻게든 물에 들어가지 않고 버티려는 사처럼 보였다. 머리를 꼿꼿이 세워 정면을 보고, 양손은 물에 닿지 않으려 있는 대로 치켜드니 어깨는 무겁고, 물은 매번 저항하듯 나를 아래로 잡아끌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라앉아야 다시 뜰 수 있다. 입수가 있어야 출수도 있다!


출수가 어렵다고 해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물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처음 물에 뜨는 법을 배울 때 머리를 생각보다 더 물속에 깊이 넣어야 뜨기 쉬웠던 것처럼!


접영의 동작은 늘 잠시의 침잠을 전제로 한다. 머리부터 수면 아래로 약간 가라앉고 몸통이 그 뒤를 따라 매끄럽게 물속으로 빠져든다. 그런 다음 몸이 떠오르려는 부력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혼자 아등바등 힘쓸 게 아니었다. 힘이 부족해서 출수를 못한 것도 아니었다. 저절로 떠오르려는 힘, 그걸 느낄 때까지 잠시 가라앉은 상태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거였다!


조급한 움직임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파동을 어떤 사람들은 타이밍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리듬감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나는 도약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라앉음의 끝에서 마침내 시작할 출발을 위해 잠시 웅크리는 도약 자세. 조용히 기다리면서 아래로 향하는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는 걸 이해해야만 해낼 수 있는 영법이었나 보다.


비단 물에서의 얘기만은 아니다. 가끔은 회사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인생 전반에서도 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혼자 애쓰는 것 같고, 계속 제자리 같고... 그럴 땐 너무 힘들이지 말고 힘들어하지도 말고 잠시 기다리며 쉬어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부력이 언젠가 나를 다시 띄워줄 거라고 믿고서.


그 부력은 퇴근 후 친구랑 먹는 치킨 한 조각일 수도, 지하철에서 마침 비어있는 끝자리 하나일 수도, 길 가다 들은 음악 한 소절일 수도, 내가 쓴 글에 누군가 눌러준 공감 버튼 하나일 수도 있다. 혹은 오랫동안 들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받는 순간일 수도, 거짓말처럼 찾아온 인생의 터닝포인트일 수도, 지금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잘 내린 결정 하나일 수도 있을 테다.


그럼 1년 내에 접영 감을 잡았던 거냐고? 전혀 아니다. 수영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알 듯 말 듯한 걸 보니 그 자유수영 때 만난 선배의 말이 확실히 옳았다. 다만 그동안 수없이 접영의 벽에 부딪히며 얻은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언젠가 접영신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나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힘이 조금 생겼다. 나비처럼 날아오를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중이니까, 오늘은 조금 가라앉아 있어도 괜찮아. 어쩌면 그건 더 잘 떠오르기 위한 도약일지도 모르니까. 중요한 건, 온 세상이 나를 도와주는 듯한 부력이 결국은 온다는 걸 믿는 마음 아닐까? 어떤 형태로든, 어떤 속도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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