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4일. 설 연휴 4일을 참지 못하고 첫 원정 수영.
수영이 잘 맞는 MBTI가 있을까? 한 번쯤 어느 재치 있는 스포츠경영학 전공자가 논문 주제로 연구했을 법도 한데, 귀찮은 나머지 찾아보진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NT들에게 꽤나 잘 맞는 운동이 아닐까 싶다. 모든 운동과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사실 수영은 물이라는 유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저항을 줄이면서 추진력을 얻어내는 과학적 원리가 매우 중요한 운동이다. 특히 초반에는 그 원리를 뙇하고 깨닫는 순간 곧바로 한 단계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생각이 많고 논리적인 이해력이 뛰어난 NT들에게 이렇게 찰떡인 운동이 또 있을까 싶다.
맞다, 사실 내가 NT라서 하는 얘기다. 자타공인 ENTP인 나는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수영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고 1주 차에 자유형, 2주 차에 배영, 3주 차에는 평영을 배우는 기염을 토했다.
초보 수영러 엔팁이 3주 차에 생각한 각 영법의 기본 원리는 이랬다.
자유형 : 내 몸통은 배(boat), 양 팔은 노(paddle). 카약킹을 하는 것처럼 양 쪽으로 롤링을 하며 노를 저어서 나아간다.
배영 : 자유형 뒤집은 거. 근데 이제 다리를 잘 띄워서 몸을 최대한 수평으로 만들어야 저항을 줄일 수 있다. 다리를 띄우는 방법? 일단 골반을 천장으로 발사! 그리고 발차기 폭을 작게 작게, 발등에 붙은 바퀴벌레 털기!
평영 : 어.. 개구리 그 자체..?
사실 평영은 초보 수영인들 사이에서 평발놈이라는 악랄한 애칭으로 불리는 영법이었는데, 그 애칭으로 검색해 보면 발을 아무리 휘둘러도 도무지 앞으로 나가질 않으며 이를 계기로 수포자(수영포기자)가 되었다는 후기들을 아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나는 무려 뒤로 갔다!!!
발차기를 했는데, 후진이 되다니? 매우 뜻밖의 재능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면서 선수들도 못하는 걸 해내는 대단한 회원님이라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초급반에는 타노스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
이 무렵 우리 초급반은 인원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수영이 헬스처럼 3회 차 이후 안 가게 되는 운동이었나 보다. 이 재밌는 걸 왜 중도하차하는 걸까 하다가도 평영만 하면 하체가 점점 가라앉아 몸이 수평이 아닌 수직이 되어버리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 마음이 200% 공감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수영 영상을 엄청나게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이빙덕, YS swim, 찬물, 러블리스위머, 어울림tv, 진제로, 이지스윔, 미친물개, 코타스윔, 더포스스윔 등등 웬만한 수영 유튜버는 죄다 섭렵했던 것 같다. 특히 평영 발차기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고, 지상 훈련도 따라 해보고, 그러다가 아 이건가? 하는 느낌이 오면 당장 수영장에 들어가서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잠도 오질 않던 나날들이었다.
1월 넷째 주에는 굉장히 긴 설 연휴가 있었는데, 내가 수영하던 구민회관은 연휴 내내 문을 닫았다. 수영장 냄새를 며칠째 맡지 못하자 분리불안이 온 나는 약 20년간 다져온 인터넷 서치 능력을 총동원해 서울 시내에 공휴일에 문 여는 수영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하 18도의 날씨에 첫 원정 수영에 도전했다. 유튜브에서 보고 배운 걸 직접 물에서 해보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이 날씨에 버스로 30분 거리의 사설 수영장을 찾아가다니. 이렇게 열정적인 학생이 있다는 걸 나의 랜선 강사님들도 알면 좋을 텐데!
자유수영 한 타임 가격이 내가 다니던 구립 수영장의 1.5배임에도 불구하고, 연휴에 운영하는 수영장이 별로 없다 보니 온 세상 수영인들이 다 모인 것처럼 바글바글했다. 나는 괜히 누구에게 질세라 1시간 30분을 꽉꽉 채워 열심히 연습했다.
- 가라앉으려고 하면 어이없게 더 잘 뜬다!
- 약간 바닥으로 파고들 것처럼 해야 하체가 뜬다!
- 호흡할 때 물 밖에 나오려 하지 말고 물속에서 고개 먼저 돌리기!
유튜브에서 들은 이 팁들을 지키려고 노력하자 처음으로 자유형으로 25m를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눈물이 날 것 같은 감격의 순간! 사실 수경 속에서 살짝 남몰래 눈물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하다. 첫걸음마를 뗀 아이의 심정이 이런 걸까? 아니, 오히려 첫걸음마를 뗀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인 걸까? 성취감이 주는 도파민에 휩싸여 수영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혹시 락스물이 본드처럼 중독성이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나락도 락이다.
젓가락도 락이다.
희노애락도 락이다.
오락가락도? 락? 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락이다.
그렇다면, 락스물도 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