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이풀은 어린이만 쓰는 게 아니었음을

2023년 1월 3일. 수영 1일 차. 첫 허우적.

by 뜨는작가 릴코

러닝을 메인 운동으로 하던 내가 수영을 시작하게 된 건 무릎 때문이었다. 한번 십자인대를 다친 이후로는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면 바로 무릎이 욱신거려서, 이미 여러 번 추천받았던 운동 수영에 드디어 첫 발을 들이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닝과 더불어 최고의 가성비 운동 양대산맥을 이루는 수영! 수영복, 수경, 수모 세 가지만 있으면 주 3회 한 달 강습비 단돈 5만원대에 모든 영법을 다 배울 수 있다. 와! 수영 강습 신발보다 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졌던 건 강습료가 아니라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레깅스 입고 야외에서 뛰는 것에 익숙해져서 이제 다른 사람들 시선을 많이 신경 쓰지 않는 나조차도, 쫄쫄이 삼각 원피스 수영복은 어나더레벨이었던 것이다. 뱃살을 좀 빼고 나서 가야 하지 않나? 가슴 실리콘 패드는 좀 볼륨감이 있는 걸로 사는 게 알량한 자신감을 불어넣는데 도움이 되려나? 이 부유방은 대체 뭐람? 지금 생각하면 어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런 질문을 가득 안고서 수영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그리고는 곧 그 유명한 밈을 알게 되었다. 수영장 가면 초급반만 죄다 새까만 수영복 입고 있고, 고인물이 될수록 점점 컬러풀하고 화려해진다는 것! 아, 그렇다면 질 수 없다! 나는 생초보지만 세상 화려한 수영복을 배냇저고리로 선택했다.


꽤나 파격적이었던 나의 첫 수영복. 물속에서 보면 더 예쁘다.


기세등등하게 어디 다른 수영장에서 좀 놀다온 고수인 척 어깨 펴고 입장한 나에게 쌤은 물으셨다.

"처음 오셨어요? 수영 어디까지 배우셨어요?"

"아, 네, 저, 네 아니요 네 오늘 처음 배워요..."

"네? 아 저희 수영장은 기초반은 없고 초급반부터라 자유형은 할 줄 아셔야 등록이 되는데..."

"헉 그...럼 저 집에 가요?"

"일단 오셨으니까 제가 최대한 봐드릴게요. 저 쪽 어린이풀로 가시죠."

그때부터였다. 내가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허우적대기 시작한 건.


다른 사람들이 25m 레인에서 유유히 킥판발차기를 하는 동안, 나는 어린이풀에서 음파를 배웠다.

'음파 음파 음배고파 배고음파 배고파 배고파...'

별로 체력소모한 것도 없는데 왜 그것만으로도 배가 고파지는지 당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배가 고파서 수영장 물을 마신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하도 많이 마신 탓에 해수풀이라 간이 짭짤하게 잘 되어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꾸 가라앉는 하체 때문에 나 혼자 허리에 헬퍼(일명 거북이)까지 메고 아등바등 댔는데, 그 부끄럽고 왠지 창피하던 순간이 어쩐지 계속 기억이 남는 게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혹시 물 많이 마시면 집에 갈 때 데스크에 물 값 따로 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다가 첫 강습이 끝났다.


대체 난 왜 안 뜨는 거냐고!!!!!


노력하고 악을 써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는 느낌은 오랜만이라, 열이 뻗쳤다. 더 이상은 어린이풀 쓰는 민폐 성인일 수 없다. 주말 자유수영을 가기로 결심했다. 다음 강습 때는 물에 동동 뜨는 내 모습을 보여주리라 다짐과 함께.


자유수영 2시간 내내 15m짜리 어린이풀을 킥판과 함께 느리게 왔다갔다한 결과, 물에 뜨는 감각을 히려던 나는 어느새 수영에 한 발 더 깊이 빠져드는 느낌을 얻었다. 물아일체의 물이 이 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며, 물과 친해지고 물에서 노는 게 편하다고 마음먹을수록 조금씩 늘어가는 걸 느꼈다.


물에 적응을 조금 하고 나니, 어느덧 물에서의 내 몸은 시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체가 가라앉는다면 반대편 머리를 더 깊이 넣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거였다! 얼굴만 찰박대는 수준이 아니라, 물과 하나가 된다는 마음으로 약간 과감히 머리를 넣어버렸더니 물에서 밸런스를 찾으며 다리가 들리는 게 느껴졌다. 유레카!!


호흡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들어서 숨 쉬려 하지 말고, 물 위에 가볍게 눕는다는 느낌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주면 생각보다 물 밖 공기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허리에 질끈 묶었던 헬퍼를 떼고, 수영 2주 차에 당당한 성인풀 이용자가 되었다.


물과 친해지는 건, 기술보다는 마음의 문제였다. 어디 물뿐이겠나, 사람도 다 그렇지. 수영이 나한테 인생을 알려주는 것 같아 당분간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뜬 건 몸이었지만 조금은 마음도 가벼워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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