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는 왜 교회에서 먼저 지칠까

칭찬으로 자라 정죄로 길들여진 마음

by 서이안

유난히 죽음의 냄새를 일찍 맡았다.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육신과 집안을 가득 채운 통곡 소리. 그 강렬한 기억은 10살도 안 된 꼬마에게 막연하지만 거대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죽으면 어떻게 되지?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


그래서였을까.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게 교회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었다. 나에게 그곳은 살기 위해, 아니 죽지 않기 위해 매달려야 하는 동아줄이었다.


어른들이 "너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집에서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판검사요"라고 했지만, 교회 문턱만 넘으면 내 대답은 확고했다. "저는 나중에 목사님이 될 거예요."


그 말을 할 때마다 돌아오던 어른들의 환호가 좋았다. "아이고, 이안이는 믿음이 대단해. 크게 될 거야." 그 칭찬을 들으면 죽음의 공포가 잠시 잊히고, 내가 구원받은 안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칭찬을 진통제처럼 맞으며 자랐다.



내향성은 고쳐야 할 질병인가요?


나는 칭찬을 수집하는 아이였다. 십계명을 줄줄 외워 상을 받았고, 성경 퀴즈 대회에서는 늘 1등을 차지했다. 그렇게 교회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였다.


단 한 가지, 내 발목을 잡는 게 있었다면 타고난 기질이었다. 나는 지독한 내향형이었다.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건 자신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소리치는 건 고역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란 교회의 문화는 내 기질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유독 뜨거운 훈련을 강조했다. 찬양 시간에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뼉 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덩치도 크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에게, 무릎 꿇고 엉덩이를 위아래로 쿵쿵 들썩이는 행위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엉덩이를 들썩이지 않으면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고, 친구들의 시선이 쏠렸으니까.


기도 훈련은 더 가혹했다. “주여!”를 100번, 1,000번 채워 외쳐야 했다. 단순히 횟수만 채우는 게 아니었다. 목소리에 간절함이 없거나 소리가 작으면 가차 없이 호명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보는 강대상 앞에서 목이 터져라 “주여!”를 외쳐야 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오케이" 사인을 보낼 때까지,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안수기도 시간, 목사님은 내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리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주여! 이 아이에게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활발한 성격으로 변화될지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서이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책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1,09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무례한 교회에 던지는 정중한 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