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목사님

우리는 교회의 '가족'이었을까, 잘 돌아가는 '부품'이었을까

by 서이안

교회에는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배우지만, 현실의 교회 문턱을 넘는 순간 우리는 철저하게 효용 가치에 따라 재배열된다.


백화점에만 VIP 라운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도 성골과 진골, 그리고 평민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상가 지하 습한 골방에서 성도 한 사람을 위해 눈물 흘리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많다. 하지만 교회가 커지고 시스템이 갖춰지는 순간, 그곳엔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긴다.


담임목사 일가인 성골, 교회의 주주와 다름없는 장로·권사·고액 헌금자 그룹인 진골, 주일 예배만 드리고 헌금 내는 대다수의 성도 그룹인 평민. 그리고 하나 더, 6두품이 있다.


신라 시대 6두품이 능력은 있으나 핏줄의 한계로 주류가 되지 못했던 지식인 계층이었듯, 교회에도 몸 바쳐 일하는 실무자 그룹이 있다. 방송실 봉사, 청년부 임원, 각종 행사 기획... 가진 건 열정과 신앙심뿐인 우리는 교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묵묵히 돌아가는 톱니바퀴였다.


나는 교회의 전형적인 6두품이었다. 부모님이 교회의 유력한 장로님이나 권사님이었다면 나를 위한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우리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 나를 대변해 줄 어른도, 내가 부당하게 갈려 나갈 때 목사님께 한마디 해줄 배경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인정받고 싶어 나를 갈아 넣었는지도 모른다. 배경이 없으니 실력과 헌신으로라도 증명해야 했으니까.


“이안 간사님, 항상 바쁘네. 역시 믿음직해.” 그 칭찬을 훈장처럼 여기며 버텼다. 내가 더 열심히 순종하면, 언젠가 이 거대한 가족의 진짜 구성원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깨달았다. 이 시스템 안에서 나는 가족이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었다.


냄비 속의 수육, 그리고 닫혀버린 문


그 서늘한 깨달음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찾아왔다. 당시 나는 교회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내게 "장례식장에 꼭 한번 들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공식적인 예배 집례는 아니더라도, 담임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주신다는 건 배경 없는 내게 큰 위로였다. 드디어 나도 목사님의 관심 안에 있구나 싶었다.


장례식 첫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엄마, 목사님 오실 거니까 제일 좋은 수육 한 덩이는 썰지 말고 남겨주세요" 어머니는 큰 육수 냄비 깊숙한 곳에 고기 한 덩이를 따로 빼두셨다. 손님들이 고기가 부족하다고 할 때도, 냄비 뚜껑을 열어보며 "이건 안 돼. 목사님 오시면 드려야 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그 고기를 사수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도록 목사님은 오지 않았다. 혹시 잊으신 건 아닐까? 전화를 걸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6두품인 내가 감히 성골인 목사님께 "왜 안 오시냐"고 독촉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그건 보이지 않는 위계가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둘째 날 밤이 지나도록, 약속했던 방문은커녕 전화 한 통 없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유는 "갑자기 중요한 일정이 생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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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책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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