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았다'는 착각: 우리가 성령이라 부른 도파민

하나님은 자판기가 아니고, 너의 일터는 성소다

by 서이안

딸기라테가 나오면 내 남자?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묘한 간증의 세계로 이끌었다. 썸네일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략 ‘배우자 기도 응답, 딸기 라테의 기적’ 같은 류의 제목들이었다.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소개팅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단다.

“하나님, 이 사람이 제 짝이라면 카페에서 딸기 라테를 시키게 해 주세요.”


그런데 남자가 정말 딸기 라테를 시켰고, 자매는 “소름 돋는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며 그 자리에서 운명을 확신했다고 한다. 댓글창은 “기도의 능력이다”라며 난리가 났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풋, 하고 헛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문득 짓궂은 상상이 들었다. 만약 그 남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면? 그녀는 ‘아... 이 남자도 아니구나...’ 하며 실망한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켰을까? 아닐 거다. 아마 “하나님이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시는구나” 하며 또 다른 의미를 붙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걸 간증이라 부르지만, 심리학 책에서는 확증 편향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다.


문제는 취향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언제부터 하나님을 내 입맛에 맞는 결과를 배달해 주는 쿠팡맨쯤으로 여기게 된 걸까? 내 선택에 책임지기 싫어서, “하나님이 시켰어요”라고 핑계 대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거기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정리하자면, 감정이 문제라기보다 내가 원하는 결론을 하나님 이름으로 확정하는 방식이 문제다.



수련회, 도파민이 폭발하는 우리들의 ‘합법적 클럽’


이런 보이는 기적과 짜릿한 감각에 중독된 현상이 집약된 곳, 바로 수련회다.

솔직해지자. 우리가 수련회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단지 영성 때문만은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낯설어서 ‘흠뻑쇼’나 ‘록 페스티벌’ 같은 세상의 놀이판에는 끼지 못하는 우리들. 죄책감 없이 인싸처럼 놀고 싶은 욕망을 해소해 주는 유일한 해방구. 그게 바로 수련회였다.


화려한 조명, 심장을 때리는 드럼 비트, 땀 흘리며 뛰는 군중들. 세상 콘서트 못지않은 그 열기 속에서, 우리는 도파민을 성령의 임재라고 믿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물론 뜨거운 감정이 늘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진짜로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다만 ‘뜨거움의 강도’가 곧 ‘신앙의 깊이’로 환산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쉽게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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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책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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