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믿음 없음’으로 매도하는 폭력, 그리고 기복신앙

by 서이안

자판기가 되어버린 하나님, 그리고 0시 기도의 코미디


"0시 정각에 드리는 기도는 영적 능력이 남다릅니다. 이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강단에서 확신에 차 하신 말씀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엉뚱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그럼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으로 0시인 건가? 우리가 0시일 때 뉴욕은 아침 10시인데, 하나님은 시차 적응을 하시며 기도를 들으시나?’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것이 한국 교회가 기도를 대하는 방식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본질(하나님을 향한 마음)보다는 형식(특정 시간, 특정 숫자)에 영험한 능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주술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기독교라는 세련된 간판을 달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샤머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이런 무속적 기복신앙의 끝판왕은 단연코 ‘배우자 기도’다. 어떤 이들은 키, 연봉, 성격, 심지어 시댁의 분위기까지 엑셀 표처럼 정리해 하나님께 결재를 올린다. 내가 40일 작정 기도를(Input) 했으니, 하나님은 내 조건에 맞는 완벽한 완성품(Output)을 내놔야 한다는 논리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을 우주적 결혼정보회사 매니저나, 알라딘의 램프 속 요정 지니로 취급하는 아주 저급한 거래다.




나 역시 ‘거룩한 가해자’였다


사실 나는 이런 문화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나 역시 “기도해 보자”라는 말을 무기로 휘두르던 비겁한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교회 간사로 일하던 시절, 아끼던 제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찾아왔다. 교회 시스템과 관계에 지쳐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다는 고민이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 이야기를 들어줄 자신이 없었다. 그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도, 책임질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거룩하고도 편리한 도망칠 구멍을 찾았다.


“우선 기도해 보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을 거야.”


나는 그 말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기도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는 공감과 “그래도 괜찮다”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포장지 뒤에 숨어, 나의 무력함과 귀찮음을 감추었다.


그때 깨달았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 “하나님의 뜻일 거야”라는 말은 때로 가장 게으른 자들의 알리바이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거룩한 척하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서이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책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1,09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6화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 왜 협박을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