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덮읍시다"라는 거룩한 착취에 대하여

성역의 카르텔, 가스라이팅, 그리고 세상이 가르쳐준 다정함

by 서이안

거룩한 만신창이, 나는 부모 없는 노예였다


얼마 전, 아는 형의 부탁으로 청년부 수련회를 도우러 갔다. 2박 3일의 고된 일정을 무사히 마쳤을 때, 청년들이 나를 에워싸며 건네는 말들을 듣고, 그만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너무 수고하셨어요.”, “병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저희가 더 도울 건 없나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상식적인 다정함 앞에서 나는 왜 이토록 먹먹해졌을까. 가만히 돌아보면, 세상의 그 흔한 다정함이 내가 자라온 교회 안에서는 너무나 희귀한 사치였기 때문이다. 나의 20대 초중반은 만신창이였다.


새벽 5시, 덜컹거리는 교회 승합차의 차가운 핸들을 쥐고 비몽사몽간에 동네 골목을 돌며 아이들을 태웠다. 밤 11시가 훌쩍 넘어 마지막 학생을 내려주고 돌아왔을 때, 불 꺼진 텅 빈 교회 주차장에 홀로 시동을 끄고 앉아 있으면 뼛속까지 시린 피로가 밀려왔다. 운전대를 놓기가 무섭게 주일학교 아이들 앞에 서서 찬양인도 및 설교를 했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대예배 방송실을 지키고, 점심 봉사 후 각종 오후 프로그램까지 진행했다. 수련회가 끝나면 앓아누웠고 주일이 지나면 목이 쉬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괜찮냐”라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라는 독려만 돌아왔다.


“돈 받으니까 당연히 해야지.”


최저시급은커녕 교통비 수준의 푼돈을 쥐여주며, 교회는 나의 피땀을 지극히 당연한 노동으로 후려쳤다. 목회자나 장로 부모를 둔 청년들이 적당한 봉사만으로도 칭송받을 때, 아무런 영적 빽이 없던 나는 무한정 부려 먹어도 되는 소모품처럼 취급받았다. 그 폭력적인 시스템 속에서 내 자존감은 쉴 새 없이 바닥을 뚫고 추락했다. 나는 정말 능력이 없고 모자라며,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는 인간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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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책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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