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전 재산을 삼킨 교회는 어디로 갔나

헌신을 착취하는 시스템과 '내 눈의 들보'라는 알리바이

by 서이안

얼마 전, 교회 중직을 맡고 있는 지인과 마주 앉았다. 고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각색한 연극을 보고 온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교회의 허물을 들추며 악마의 교묘한 전략에 속아 넘어갔던 자신의 교만을 깊이 회개했다고 했다. 그의 진심 어린 고백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만, 내 입안에는 씁쓸한 모래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교회의 재정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예산의 절대적인 권한은 오직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해외 선교지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세워진 곳은, 사실상 목사님 일가가 훈련과 휴식을 핑계로 머무는 별장처럼 쓰였다. 그곳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교회의 예산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갔다. 본교회의 원로 목사님이 옆 동네에 지교회를 세우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는 교묘한 편법 세습도 당연하다는 듯 진행되었다.


참다못해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평생 그 교회 건물을 쓸고 닦으며 헌신했던 권사님이었다. 권사님은 조심스레 예산의 투명성을 지적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묵살과 뼈아픈 갈등뿐이었다. 결국 권사님은 평생 눈물로 기도했던 교회를 쫓기듯 떠나야 했다.


부끄럽게도 권사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식당 주방에서 굽은 허리로 일해 모은 노인들의 헌신과, 닳고 닳은 손마디로 퇴직금 전부를 바쳤던 권사님의 주름진 얼굴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겨우 십일조나 낼 줄 아는 내가 감히 교회의 구조를 비판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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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사가 되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어 오늘도 살아냅니다. 교실 속 아이들과의 대화, 우연히 스친 풍경, 책과 영화 속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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